여백
여백

[윤상길의 스타톡톡] 추악한 현실에 맞선 우크라이나 여성감독 키라 무라토바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영화 세계...30일부터 서울극장 회고전 윤상길 칼럼니스트l승인2019.10.20l수정2019.10.20 00:39

크게

작게

메일

인쇄

신고

[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흑해 연안에 자리한 우크라이나. 인구는 한국보다 조금 적으나(4,400만), 면적은 한반도의 2.7배에 이르는 비옥한 땅을 지닌 동유럽 국가이다. 1991년 과거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후 다음해 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수교 28년이 지났지만 양국의 교류는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다. 우리에게 우크라이나는 ‘축구 잘 하는 나라’ 정도로 알려졌을 뿐 특히 문화교류는 미미하다.

알고 보면 우크라이나는 동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문화 강국이다. 우크라이나 문학의 전통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구전문학은 이보다 훨씬 앞선다. 우크라이나의 음악은 아주 생명력이 넘치는데, 민속 음악이 특히 그러하다. 현대의 작곡가로는 콘스탄틴 얀케비치, 율리 메이투스, 유리 마이보로다 등이 있다. 연극 또한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을 자랑한다. 영화 분야에서도 여기 소개되는 카라 무라토바 등 걸출한 영화인을 배출했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우크라이나 영화감독 키라 무라토바(1934~2018)는 세계 영화사에서 가장 강렬하고 독특한 작품을 선보인 감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관객들에게 낯선 존재이다. 그는 유년기를 루마니아에서 보내고 모스크바국립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모스코바의 오뎃사 영화 스튜디오에서 영화 작업을 했다. 이방인으로서의 그의 독특한 이력은 비타협적인 영화 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소비에트 시절부터 인간이 지닌 욕망과 사회의 구조적 그늘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공동체에 관한 급진적 상상과 통렬한 비판을 오가며 그는 1964년부터 2012년까지 약 20편의 작품을 발표했다. 활동 초기부터 개봉 금지와 검열을 수차례 당하고, 이 때문에 70년대에는 투옥되는 등 연출에서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그러나 키라 무라토바는 영화와 사회에 관한 자신의 고민을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그는 상대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대중적 화법의 영화도 능숙하게 연출하였지만, 대표작으로 꼽히는 ‘무기력 증후군’(1989)처럼 도전적이고 실험적 스타일의 영화를 다수 발표했다. 멜로드라마, 문예영화, 범죄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의 일관된 주제와 대상은 사회의 하층에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과 그들의 무력한 일상으로, 관객이 외면하거나 억압하는 추악한 현실을 찾아내 일상의 그로테스크한 풍경으로 제시한다.

키라 무라토바는 “예술은 금지(禁止)에서 태어난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금기, 그로테스크한 현실은 일상의 일부이다. 그는 이야기의 선형적(線形的) 구조를 파괴하는 진행을 시도하며 극 중 사건 묘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보이길 거부했다. 이미지를 통해 영화적-철학적 사유를 전개하는 것에 두려움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그의 영화는 종종 거칠게 보이고 의미가 직접적으로 파악되지 않아 당혹스러움마저 안겨준다.

이런 이유로 긴 시간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외의 국가에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주류와는 다른 영화 언어에 대한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했으며 부조리한 사회 현실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비판을 가한 감독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런 비타협적인 독특한 그의 스타일은 1960년대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했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1924~1990)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세르게이 파라자노프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더불어 구소련을 대표하는 영화감독이다. ‘잊혀진 선현들의 그림자’, ‘수람 요새의 전설’, ‘석류의 빛깔’ 등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대표작을 통해 민중의 삶 속에 흐르는 문화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했던 감독이다.

고인이 된 키라 무라토바의 스크린 소환은 주한 우크라이나대사관, 알렉산더 도브젠코 센터의 후원을 받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센터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울아트센터 관계자는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특한 영화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다”라고 말한다. 서울아트센터는 30일부터 11월 10일까지 서울 종로의 서울극장에서 ‘야성적 순수 : 키라 무라토바 회고전’이란 이름으로 그를 한국의 스크린에 불러낸다.

이번 회고전에는 1990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인 ‘무기력 증후군’을 포함한 모두 11편의 작품이 상영될 예정이다. 초기작 ‘짧은 만남’(1968), ‘기나긴 이별’(1971), ‘드넓은 세상을 알아가며’(1980). ‘뒤바뀐 운명’(1987), ‘세 가지 이야기’(1997), ‘체홉의 모티브’(2001), ‘피아노 조율사’(2004). ‘하나 안의 둘’(2007), ‘따뜻한 멜로디’(2009), ‘영원 회귀’(2012) 등이 관객과 만난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이번 키라 무라토바의 회고전의 무게를 더하기 위해 서울아트센터는 전문가 초청 대담과 시네토크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11월 3일, 6일, 9일 세 차례 열리는 이번 특별 프로그램에는 알렉산더 도브젠코 센터의 이반 코즐렌코 원장, 이희원 교수(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김숙현 프로그래머,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 등이 참석한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골프장TF전략사업기사제보광고문의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2가 50-5 태호빌딩 505호  |  발행·편집인 : 문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문정호  |  전화 : 02-2277-7371  |  팩스 : 02-2277-1480  |  이메일 : master@thegolftimes.co.kr
제호명 : 골프타임즈  |  문광부등록번호: 서울 아 02033  |  사업자등록번호 : 202-16-92335  |  통신판매업사업자번호 : 제2012-서울중구-0827호  |  출원번호 : 40-2012-0016887
골프타임즈는 상표법에 의거하여 특허청에 상표(국,영문)등록이 되어있습니다.  |  골프타임즈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법 보호를 받으며 무단복제 및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2019 골프타임즈.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