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우리는 언제까지 역사를 다시 읽고 써야만 하는가. 항일운동은 물론 동학혁명,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촛불혁명은 역사적으로 과거 완료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화되는 역사이다. 시인 윤동주의 작품은, 그리고 연극 ‘동주-찰나와 억겁’은 이 역사의식을 보여준다.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진정한 ‘반성’이 있어야만 역사가 바로 설 수 있음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 서울공장의 낭송음악극 ‘동주-찰나와 억겁’이 19일부터 3월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연장 공연된다. 지난 공연(1월 26일~2월 3일)이 전일 전회 매진된 데 따른 연장 공연이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공연의 의미도 담겼다. 청년 윤동주가 일본 유학을 위해 ‘히라누마 도오쥬’로 창씨개명을 한 후 그에 대한 부끄러움과 고뇌를 담은 내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지난 공연에서 서울공장의 배우들은 그동안 어떻게 참아왔는지 궁금할 정도로 자신의 끼와 재능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펼쳐놓았다. 이번 연장공연에도 모든 배우들이 지난 공연 때의 역을 맡고 있어 한층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기대하게 한다. 추헌엽(윤동주), 이선(우물의 여인), 김충근·이미숙(어른아이), 구정은·김예은·우혜빈·김예원(아이들) 배우가 그들이다.

임형택 연출과 윤경로 음악감독의 찰떡궁합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지난 8년 간 서울공장에서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이다. 지난해 대학로 연극 최고의 무대로 평가받은 ‘햄릿-아바따’에 이어 ‘동주-찰나와 억겁’을 통해 음악과 문학을 연극에 녹여낸 장본인들이다. 공연예술의 영역에서 이들 콤비가 보여주는 확장성은 늘 주목할 만하다.

이 연극은 낭송음악극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무대로 화제를 모았다. 일종의 ‘데포르마시옹’(회화나 조각에서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고 주관적으로 확대하거나 변형하여 표현하는 기법) 무대를 만들어냈다. 어차피 연극이란 연출자가 보고 느낀 걸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객에게 잘 고백하는 게 아닐까. ‘무엇을’ ‘어떻게’ 고백하느냐는 전적으로 연출자의 몫이다. ‘무엇을’은 고백의 내용이고, ‘어떻게’는 고백의 방식이다.

이 낭송음악극에는 ‘서시’, ‘참회록’ 등 윤동주의 시 16편이 소개된다. 이들 작품은 배우들의 시낭송으로, 노래로, 춤으로, 그리고 연기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내면의 투명성을 지키고, 시인의 부끄러움과 비겁함이 지닌 부정성을 반성적 사유로 끌어들여 그의 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식을 택했다. 무차별 경쟁과 자기 이익 창출만을 도모하는 이 시대에 이 연극은 반성하는 사유 과정을 거쳐 새로운 항일정신을 모색하고 있다.

1945년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두고 후쿠오카형무소에서 29세에 생을 마감했지만 시인 윤동주가 한국문단에 뿌려놓은 시의 씨앗은 앞으로 한국문학에 영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학의 영원한 이상으로서, 끊임없이 현실의 개혁의지를 촉구하면서 시인을 비롯한 모든 예술가들이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단독성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도록 후배 예술가들을 독려하며 함께 할 것이란 사실을 연극 ‘동주-찰나와 억겁’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연극을 통해 갈망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카타르시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감상하는 이유가 배우의 정서를 대리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관객은 ‘동주-찰나와 억겁’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상처나 콤플렉스를 끄집어내 치유하려고 할 것이다.

여덟 명의 배우가 번갈아가며 쏟아내는 윤동주의 기억의 흔적 속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정의, 용기 같은 나의 기억을 찾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상처가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듯 서서히 오버랩 되면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항일정신을 찾게 될 테니까 말이다. 낭독음악극 ‘동주-찰나와 억겁’을 통해 극단 서울공장은 매일매일 물을 주고, 풀을 뽑고, 살피는 농부의 심정으로 지금도 날마다 오늘을 기록하고 있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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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은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