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오랜만에 만난 부부모임이 시끄럽다.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궁금한 게 많고, 여자는 여자들대로 할 말이 많다.

그중 연장자가 조심스레 물어본다. “정년퇴직하고 집에 계시는데, 나는 봉사활동 나가느라 집을 비우는데, 혼자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네. 당신 할 일 남기라고 설거지는 두고 가라는데 미안하기도 하고.”

회사와 집 밖에 모르던 남자가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 들어앉아 TV속으로 빠져들어 늘어나는 몸무게와 무료함에 늘어나는 잔소리로 여자들은 반기를 든다. 여자는 이제 아이들 다 키우고 허리 펴며 친구 만나고 사회생활에 여념 없는데 남자는 바깥일을 마치고 들어앉았으니 주객이 바뀌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설거지 할 테니 나가보라는 반가움, 마늘도 까고 고구마 줄기 껍질도 벗기기를 부탁(?)하며 죄송스럽기도 하고 미안해하는 늙은 여자와 달리, 그래도 한 두 해 젊다고 이구동성으로 당연지사로 여기란다. “아니지요. 그건 오히려 건강하게 무언가 필요한 일을 만들어주고 활력이 생기는 거예요. 아예 한가지씩 새로운 일들을 알려주고 청소도 하고 빨래도 널어보고, 숙제를 내드리는 것이 서로를 도와주는 합일점이 되지요.”

가부장적인 시대가 아닌 현대를 사는 부부화합과 가족건강이 지침이란다. 3-40년을 살아오며 해오던 일을 서로 바꾸어 해보는 일이다. 대외적인 일은 아니지만 표시 없는 집안일에 재미를 첨부해보는 지혜를 발휘해보란다.

“빨래도 세탁기가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야. 널 때는 그냥 척척 걸칠게 아니라 탁탁 털어서 널어야 하고, 또 넌다고 끝나나. 걷어서 개켜야지. 건조기 사 줄 돈 없으면 몸으로 때우는 거야” 남자들도 할 말이 많다. TV만 보고 차려준 삼시세끼 먹기가 불편하고 소화도 안 되고 배만 나온단다. 그러니 아예 집안일을 함께 나누어 새롭게 배우는 살림살이가 만만찮다. 단순한 것 같은 집안 살림 주부의 일이 다채롭다.

오랜만에 나선 가을나들이 길에 부부가 모여 앉아 삶이 풍성해진다. 이제는 천천히 느리게 소소함을 즐기며 가는 인생여정이다. 서로를 탓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며 보듬어 안고 가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사람이란 움직이는 원동력이 있어야 하니 그 꺼리를 만들어주고 따로 또 같이 즐기면서 노후를 만들어 가야겠다.

어린 왕자의 길들이기가 하루아침이 아닌 서서히 하나씩 풀어나가는 삶의 매듭이, 서로를 길들이는 열쇠가 되는 시간. 헤어짐보다는 화합으로 그렇게 모여 서로에게 시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은 자고로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이어지는 길이니…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