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송수복 시인] 60여 년 전 초등학교 때였습니다.
3학년 신학기의 우리 담임선생님은 새로 부임한 조희현이셨습니다. 첫 수업의 구구단 외우기로 칭찬 받았던 그 기쁨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목소리가 차분하고 자상한 선생님은 마치 아버지 같았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왼 나는 졸업 후에도 계속 선생님과 손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조희현 선생님은 보내는 편지마다 칭찬하셨습니다. 편지를 잘 보관했다가 출판하자고 하셨습니다. 결혼 후 시부모님을 모시며 직장까지 다니자 고생이 많다고 늘 안타깝게 여기셨습니다. 시어머님의 치매 수발로 고생할 때 친정아버지처럼 걱정하며 칭찬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시어머님에게 맛있는 것 사드리라며 돈까지 보내주었습니다. 너무나 감격했습니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보내준 돈보다 더 큰 기쁨이었습니다.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나에게는 천금이었습니다. 그해 시어머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선생님이 보내준 돈을 뜻 깊게 쓰고 싶었습니다. 겨울을 막 보낸 이른 봄이었습니다. 지인의 이불가게에서 파란색과 분홍색 꽃무늬의 이불 두 채를 샀습니다. 남편과 제 이불을 선생님께 휴대폰으로 사진까지 보여드리며 자랑했습니다.

편지가 아닌 휴대폰 통화로 사모님이 몇 차례 수술한 후 입원 중임을 알았습니다. 선생님도 집과 병원을 오가는 간병에 많이 지친 듯싶었습니다. 간병하다 지쳐 환자보다 먼저 쓰러진 지인들을 봐왔던 터라 걱정됐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부터인가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끝내 선생님과의 통화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서로 얼굴도 기억 못합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얼굴은 60년 전 구구단 외우기 공부하던 그때의 모습입니다. 손편지와 전화가 아닌 찾아가 뵙지 못한 불찰에 가슴 아립니다.

2021년 봄입니다.
겨울 이불을 치우고 담임선생님이 보내주신 돈으로 산 이불을 꺼냈습니다. 분홍색 바탕에 작은 꽃무늬가 아직도 산뜻합니다. 분홍색 이불 위로 초등학교 뒷산에서 야외수업을 했던 파란 잔디가 떠오릅니다.

60년 전 선생님과의 만남은 제 삶에 은혜와 감사를 심는 디딤돌이었습니다. 부디 돌아오는 스승의 날에는 빨간 카네이션을 선생님 가슴에 꼭 달아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시인 송수복은
시와수상문학작가회 수석부회장 송수복 시인은 서울시 청소년지도자 문화예술 대상·시와수상문학 문학상 수상. 시낭송과 시극 등 다양하게 활동하는 송 시인은 첫 시집 ‘황혼의 숲길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