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능인 스님, 시인] 정월 대보름이면 이른 아침 어머니의 재촉으로 일어났다. 졸린 눈을 비비며 어머니가 준 땅콩이나 호두로 한 해 부스럼나지 않고 건강하게 해달라는 ‘부럼과 이박기’에 이어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친구를 만나면 더위를 팔기 위해서였다.

친구를 보면 재빨리 이름을 부른다. 친구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내 더위 사가라’고 외쳐 더위를 넘겨버리면 상쾌한 기분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깡충깡충 토끼뜀으로 집에 오면 오곡밥과 나물이 가득한 아침상이 군침부터 돌게 했다. 부럼과 이박기처럼 올 한해도 허기지지 않고 배를 든든히 채우게 해달라는 기원과 함께 영향 결핍을 예방하는 정월 대보름 밥상이었다. 나물무침은 고춧가루 등 양념을 하지 않았다.

정월 대보름의 민속놀이는 다리 밟기를 비롯해 달맞이, 달집태우기, 더위팔기, 복토(福土) 훔치기, 석전(石戰 돌싸움), 액막이 연 날리기, 쥐불놀이, 줄다리기, 차전(車戰)놀이, 쇠머리대기 등 다양했다. 이 모든 민속놀이는 대보름을 기점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삶의 희망을 북돋았다.

오늘날에는 안타깝게도 상당히 잊혀져가는 옛 풍속이다. 조상님들의 세시풍속을 생각해 보면, 개개인의 욕망으로 각박한 요즘과 사뭇 다르다. 조상들의 삶은 하심(下心)하듯 아래를 향해 흘러가는 물처럼 천리에 순응하여 다툼이 없는, 자연과 함께하는 순수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어쩌다 지방의 민속 문화재 행사로 겨우 면면을 이어가는 옛 풍속들. 신축년 정월 대보름이 이틀 지났다. 어른들과 논밭을 뛰어다니며 함께했던 놀이도, 형들과의 정월 대보름 놀이도 이제는 풍요의 기원이 아닌 아린 그리움으로 눈가를 촉촉하게 하는 추억이 됐다.

시인 능인스님은
행복사 주지스님으로 수행자이자 예술인. 시집 ‘능인의 허튼소리’를 출간한 스님은 음반 ‘마음의 향기’ 17집의 작사ㆍ작곡ㆍ편곡한 한국음반저작권협회 회원이며, 430여회 봉사한 공연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