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겨울바람에 무뎌진 나무 등걸처럼 새치가 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갈수록 새치 염색하는 횟수도 늘고 있으니 세월이 무상할 뿐이다. 이제는 나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앙상해진 가지의 무게를 줄이며 더 단단해지고 있다. 나무들도 때가 되면 갈 때를 알고 스스로 고사를 한다. 자연이나 동물이나 자신들의 영역을 정하고 종족을 보존하며 순리에 맞게 살다가는 것을 보면 어찌 사람만 못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어느 해 늦가을, 집 근처 과수원에서 노부부가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았다. 여기는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라 그릴 만한 곳이 아닌데 어찌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하다고 물었더니, 아내 되는 분이 대답을 했다. 남편이 굳이 여기가 좋다고 이곳에서 그리자고 해서 자기도 따라 왔노라고.

나는 그 노부부의 그림 그리는 모습보다 여자 분의 인상이 참으로 고상해 보여서 가까이 다가간 이유가 더 컸었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면 짧은 곱술 파머에 검정색 염색을 해서 흰머리를 가리는 것이 보통인데, 그 아내 되는 여자는 어깨 아래로 내려오는 긴 흰머리를 커다란 핀으로 반 묶음을 했다. 자연 그대로의 흰머리를 길게 반 묶음을 한 모습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고상해 보였는지 모른다.

그 순간 나도 나이가 들면 저렇게 아름답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일찍이 링컨도 ‘사람이 나이 사십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주름살이 생기고 흰머리가 늘어난다 해도 어떠한 마음과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에 따라 사람의 인상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노부부의 그림 그리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는 가슴에 겨울바람이 스민다. 그보다 나는, 우리는 얼마나 노후의 자신을 챙길 준비를 하고 있나, 생각도 못할 만큼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 먹고 살기 바빠 노후대비를 못한 세대이기도 하지만, 나라의 여러 가지 지원이나 뒷받침도 부족하니 스스로 해결하기란 한계가 있니 않나 싶은 생각에 우울해진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고상하게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남들은 다 앞서 달려가는데 나의 삶만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 앞에서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젊었을 때 귀양 간 정약용은 초라한 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절망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선조들의 가르침과 깨달음의 실천으로 어른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또 소학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인간은 뒤돌아 볼 때마다 어른이 된다…정약용 ‘소학’ 중에서

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