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내 사랑, 이모

메마른 땅 적셔주는 봄비
이팝나무 꼭지에 달린 은빛 속삭임
아침 햇살로 감싸 주던 입맞춤

깻잎 모둠 쌈 정갈한 손길
손수 빚은 도자기의 은 푸른 접시에
고이 젖어 있다

하얀 얼굴 큰 눈망울
꽃나무에 쏟아 붓던

집안 곳곳 애잔한 자취 종종 걸음
입가에 희미한 미소는
이제 잊지 못할 저편 추억이 되어

당신이 내게 사준 물감을 뿌린 듯한
뜨거운 태양아래 모짜르트 레퀴엠에
찬란한 오색 무지개 영혼을 싣고 곱게 걸려있다
      -저자 김선 시 [굿바이, 내 사랑, 이모] 전문-

어렸을 적 대학생인 이모가 서울에 있는 김선 작가 집에 살면서 함께했던 추억을 술회한 작품이다. 김선 작가와는 20년 지기로 엄밀히 말하면 가장 어려운 사이면서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다. 자식들로 맺어진 연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처럼 번진 모닝콜과 글짓기를 김 작가 두 아들에게 가르쳤다. 이것은 자식의 자식들과 연대로 이어져 가족보다 더 끈끈한 사이로 발전했다.

김선 작가는 음대를 나온 재원이고 피아노와 기타 등 여러 악기를 다루는 귀재이다. 내 손녀의 피아노 선생이기도 했고 당시 대학생인 내 딸이 두 아들의 영어 개인 교습까지를 담당했다.

김선 작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금수저이다. 어렸을 때 고전영화에서 보는 목욕탕도 구비된 집에서 살았다. 목욕탕에 빠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업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얼마나 웃었는지, 나의 어릴 적 목욕통은 무릎을 우겨넣어야 물속에 겨우 앉을 수 있는 함지박이었다.

김선 시아버지는 일본 동경제대에서 수학했고 시어머니는 숙명여고 선생이셨다. 그런 시부모님을 모시고 피아노 교습을 하며 주부의 일까지 충실하게 해내며 불평불만 한마디 늘어놓지 않았다. 항상 성실하게 일하는 엄마였고 며느리였다. 내가 드나들며 보고 느낀 것은 본봤을 점이 많은 위대한 어머니였다. 장한 친구다.

정옥임 시인은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