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민 푸념에세이 96화] 가족도 뿔뿔이 이산가족

제사상에 치맥 올리자면 달려올까? 노경민 수필가l승인2018.09.12l수정2018.09.1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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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대문은 활짝 열어놓았다.

제삿날, 아버지는 밤을 치고 문어를 오리며 옷자락을 여미신다. 큰집, 작은집 숙모들 모여들어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며 탕국을 끓이고, 소란스럽지 않게 제사음식을 준비한다.

자정 전에 제사상의 뒤쪽, 그러니까 북향에 병풍을 치고 제사상 위에 준비한 음식을 올린다. 지방을 써 붙이고 향을 피운다. 자정을 넘어서면서 술잔을 올리며 제사가 시작된다.

“제삿날에나 하얀 쌀밥 했지, 기름 냄새도 풍기고. 떡도 하며 며칠 전부터 장 보고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어. 온 동네잔치였지.”

당시에는 먹을 것 없는 집에 제사는 왜 그리 많은지. 그나마 가을 제사는 양식이 풍성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봄 제사상은 반가울 리 없었다.

두 배, 세 배 술잔을 올리고 숭늉도 올리고 지방을 거두어 축문과 함께 불사르며 제사를 마친다. 퇴주잔 술과 제사상의 음식으로 음복하며 나누는 이야기는 가벼우면서도 정감 어린다.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무나물, 숙주나물과 하얀 제삿밥에 조선간장을 끼얹어 참기름 한 방울 떨쳐 먹던 제사 비빔밥, 탕국과 함께 후루룩 먹는 맛은 별미였다. 제사음식에는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빛의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안 쓰며, 마늘도 넣지 않는다. 오로지 조선간장으로 맛을 낸다.

제삿밥은 제사상을 주관하는 큰며느리만이 풀 수 있다. 제사음식을 나누는 것도 큰며느리 몫이었다. 제사를 마치면 밥과 탕국, 나물과 전, 떡을 아이들 심부름으로 이웃에 돌린다.

“지금처럼 가로등이 있었나. 그 깜깜한 밤에 떡이랑 전이 담긴 쟁반을 옆집에 가져다주라는데 무서워서 혼났다. 꼭 귀신이 따라오는 것 같았다고.”

요즘은 어떤가? 아파트엔 쟁반에 음식을 담아 돌릴 이웃도 없다. 혈육들마저 자정이 아니라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다. 아예 직장을 핑계로 오지도 않는다.

제사음식을 주문해서 지내면 다행이다. 또 그해 첫 제사 때 일 년 제사를 한꺼번에 지내도 천만다행이다. 제사는 그렇다고 치자. 설날과 추석의 차례까지 빼먹고 여행을 떠난다.

부모님의 은덕을 기리고, 조상님을 받드는 미풍양속은 사라지고, 현재에 충실한(?) 모습에 기가 차다. 이제는 제삿날, 설날, 추석 때 그나마 만나던 가족, 친지들이 뿔뿔이 이산가족이다.

치맥에 피자로 제사와 차례를 지내자면 혹 달려올까?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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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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