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꽃보다 더 ‘이쁜’ 것이 새싹이다.

떡잎 두 장이 땅을 비집고 고개 내밀 때 그 신비로움에 가슴이 설렌다.

“내 새끼는 당연히 임신하고 낳아 키우는 줄 알았어. 아니 낳아놓으면 지들끼리 싸우며 자랐다고 해야겠지. 한데 손주는 아냐.”

엄마가 날 어떻게 키우셨나 생각해보니, 입을 것, 먹을 것, 다 직접 챙기시며 늘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셨다. ‘엄마’ 부르면 ‘응’하시며 바로 답해주시던 자리에 있었다.

난 아이들이 자라 유치원 보내놓고 다시 직장생활하면서 낮 시간은 시부모님께 맡기거나 학원에 보내고, 주말엔 밀린 가사며 집안 경조사 챙기기에 바빴다.

“며늘애가 임신했다 할 때도 내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생각도 못 했어. 한데 출산일에 병원에서 애 울음소리 듣고 강보에 싸인 녀석을 보는데, 그 앙증맞은 손자가 정말 생명인가 싶더라.”

아직 촉촉이 물기 젖은 손자의 머리며, 손등을 조심스레 쓸어보면서 감탄할 뿐이다.

며늘애를 보면서 ‘아직 젊어서 그리 쉽게 낳았냐? 순풍 낳아 좋구나!’ 했더니 ‘아니에요. 정말 죽는 줄 알았는걸요.’라고 말한다. 아차, 그렇지. 천장에 형광등이 보이지 않을 그 까무러침이 있어야 낳을 수 있다고 큰애 낳을 때 간호사가 말했었지. 정말 그랬었지. 나도 시어머니 노릇을 한 게다. 또 한 마디. ‘어쩌니? 아들이다, 얘! 딸 하나 더 낳아야겠다. 네 편이 있어야지?’ 나는 또 며늘애 생각한다고 한다는 말이 무슨 망발인가.

맏이에게 시집와 첫딸을 낳고 나니, 시어머니 말씀이 ‘그것도 하나 못 달고 나왔냐?’시며 둘째 아들 낳을 때까지 계집아이라고 구박하셨던 때가 떠오른다. 둘째는 아들을 낳고 큰소리쳤던 기억이 새롭다.

옛날엔 대문에 금줄을 걸어두었다. 아들을 낳으면 잘 자란 볏짚으로 왼 새끼를 꼬아 붉은 고추 세 개와 검정 숯 세 조각을 엇갈려 꽂아서 보란 듯이 대문에 걸어두었다. 귀신을 쫓고 경사스러운 출산 소식도 소문내는 축복 중의 축복이었다. 내리 딸을 낳으면 금줄은커녕 청솔가지와 숯을 꽂아서 대문에 걸지 못하고 부엌문에 걸었다.

“내 아이 키울 때는 부모님이 봐 주고 하여 잘 몰랐는데 손자를 보니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다. 고것이 웃게 하고 내 시간을 함께해주니 고맙지.”

손짓 하나, 발작 하나 떼는 것도 조마조마하며 눈 맞추어 함께하는 하루가 어찌 가는지 모르겠다.

“아이는 빨리 낳아라. 그래야 엄마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키워주지.”

혼자 먹는 밥상에 마주 앉아 밥 먹는 손자가 천사다.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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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