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겨울의 깊이가 끝없을 것처럼 차가운 저녁.

수그러들 줄 모르는 추위가 짧은 하루의 끝에서 지친 사람들의 옷깃 속으로 무차별 파고든다.

분주하게 네온사인 빛 속에서 달리는 승용차들, 버스들.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일사불란하게 걸음을 옮긴다. 오늘도 예외 없이 콩나물시루 같은 전철에 담겨 나 또한 목적지로 향한다.

“배추속이 천원이요, 고구마 한바구니 삼천 원이요.”

칼바람이 뼛속으로 스미는 육교 위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난전을 벌이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어두워진 거리, 피곤과 추위에 지친 하루의 일과를 지고 가던 사람들은 아무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렇게 길 위에서의 하루가 저물듯이 나 또한 그 저녁의 거리에서 흔들리는 하나의 군상이다. 지나치고 말면 그 뿐인 세상의 속물이다.

저녁은 그렇게 끝나간다.

길 위에서

수정노을이 눈을 멀게 하는 시간
바람은 성큼성큼 어디로 가나
계절은 어쩌면 낯익은 골목을 빠져나가
알 수 없는 선술집 잎에서
기웃거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혼자만
먼지 쌓인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나보다
흙먼지를 달고 온 버스에 매달려
환불 받지 못한 내성에 길들여진 나도

은행 앞에 쭈그리고 앉아 인생을 세던
칠순 노숙의 거친 부대자루처럼
리허설도 없고
그 흔한 라스트 씬 하나 없는
일막일장의 무대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내 하루 앞문을 따며
뒷문을 닫으며

박소향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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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의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