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할매, 할매.”

술이 한 잔 된 백발의 노인은 식당 아주머니에게 할매란다. 젊어서는 그리 예의 바르더니 갈수록 태산이라고 옆에 앉은 할머니는 혀를 찬다.

늙는 것도 보기 안타까운데, 주태까지 부리는 것 같아 싫다. 함께 다니면서 보고 싶지 않은 모습만 보여주는 것도 민망하다.

지하철 안에 앉아서도 조용히 가는 게 아니라 두리번거리고, 괜히 헛기침하며 자꾸 소리를 낸다. ‘어허~, 카아~’와 같은 짧은소리를 길게 내며 신경 쓰이게 한다. 행동도 느려지고, 말도 느려지고, 머리 회전도 느려져서 답답해졌다. 자동보다 더 빨랐던 아날로그가 이젠 아예 느림으로 자리매김이다.

늙는다는 것이 몸의 쇠퇴를 말하는 것이지, 마음이나 정신이 늙는 것은 아니라 여긴다. 스스로 늙음을 자처하는 행위는 불쾌할 뿐이다.

“할매가 뭐야? 엉덩이 붙이고 앉아 일어나지도 않으면서 할매는 왜 자꾸 부르냐고. 그 좋은 이름 다 두고서. 저러니 내 같이 다니고 싶겠냐고. 마누라 부르듯이 저러면 뉘 좋아하냐고, 그 좋은 사장님도 있겠다. 아주머니도 있겠다. 부르라고 있는 호칭은 안 부르고 어먼 소리만 해대니…….”

“늙어 애교라도 있으시지. 울 집은 평생을 ‘야’랍니다. 왜 못 고치나 모르겠어요. 애들까지 남편한테 성화하는데도 생각 없이 ‘야. 야!’ 하니. 저는 포기했답니다.”

결혼 전에는 그토록 아름답다던 내 이름자를, 다 부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겠다고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놓고선 결혼하고 나니 막 대하는 그 심사는 무얼까? ‘님’까지 원하지 않는다. ‘허니, 달링’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내 이름자라도 불러주고 애들 엄마라고만 불러주어도 섭섭지 않을 것을. 이제 같이 늙었는데 나도 ‘야’ 해볼까 생각 중인데, 어떨까요?

김 춘수시인의 시구(詩句)가 떠오른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단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데, 듣기 좋고 사랑스럽게 불러주면 누이 좋고 매부도 좋아하련만. 자신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가꾸기 나름이다.

늙음이 아름다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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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