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가르침은 효의 섬김 정신을 확대해서 인간관계의 갈등과 정치적 분쟁을 해소하려는 화평(和平)의 철학...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니스트] 집밖을 나서며 맑은 가을 하늘을 보니 산책길 마음이 상쾌합니다. 추석연휴 동안 인접학문을 공부하는 딸의 과제를 도와주다가 『논어(論語)』를 펼쳤는데 늘 가까이 두는 고전이건만 새롭게 읽혀지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논어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필자는 석사와 박사 모두 『맹자』를 연구해서 학위를 받았습니다. 젊은 혈기에 맹자의 논쟁적인 내용이 재미있었고, 무엇보다 황하의 둑을 터놓은 듯한 맹자의 도도한 언변에 매료되었습니다. 이런 필자를 두고 계몽 은사께서 늘 말씀하셨습니다. “술에 비유하자면 논어는 막걸리와 같고, 맹자는 소주와 같아. 소주는 달고 독해서 금방 취하고 금방 깨어나. 막걸리는 밋밋하고 순해서 쉽게 취하지 않지만 한 번 취하면 쉽게 깨어나질 않아. 논어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맛이 있어. 자네도 내 나이 되면 논어를 읽는 묘미를 제대로 알거야!”

논어는 공자의 어록(語錄)으로 제자들에게 단방향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짧은 글이 많습니다. 고대의 어휘인지라 반드시 주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맹자 역시 어록체이지만 맹자가 제자와 제후들과 나눈 장편의 쌍방향 대화가 많아 웬만히 한문 실력만 갖추면 술술 잘 읽힙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맹자를 끼고 살았는데, 요즈음은 저술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면 솔직히 자주 읽지 않습니다. 오히려 논어를 뒤적이는 일이 많고, 이십 년 넘게 해온 경학강의는 해를 거듭할수록 논어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필자의 나이가 은사의 연세를 훌쩍 넘자 은사의 가르침이 연륜의 소치임을 새삼 공감합니다.

명절연휴 동안 집에 있으며 살펴보니 노모의 치매증상이 심각합니다. 저녁을 금방 드셔놓고 왜 저녁을 주지 않느냐고 우기는 일이 잦습니다. 노인요양원에 맡기라는 주위의 권면을 애써 외면해 왔는데 힘들어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마냥 외면할 수 없어 진퇴양난입니다. 논어의 핵심어는 어질 인(仁)이고, 공자는 인의 실천은 효(孝)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칩니다. 설사 어버이가 남의 집 물건을 훔친 도둑일지라도 고발하지 않고 감싸줘야 남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설파합니다. 필자는 지금 효의 현대적 수용문제를 두고 갈림길에 서 있으며, 이는 오늘날 노부모님을 모시는 가정의 장남들이 실존적으로 부딪히는 난제일 것입니다.

기실 논어에서 말하는 효는 “신종추원(愼終追遠)” 넉 자로 압축됩니다. 어버이 생전의 봉양도 중요하지만 어버이의 상례를 잘 치르고 조상의 제사를 잘 지내는 것이 효의 으뜸이라는 것이 논어를 관통하는 정신입니다. 공자는 신(神)의 존재문제를 경원시하고 조상과 자손이 “신종추원”을 매개로 존재의 영속성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므로 유가의 예법은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가족의 관혼(冠婚)과 죽은 가족의 상제(喪祭)를 중시합니다. 중국어에 “사람노릇은 바로 자식을 만드는 것이다(做人就是做人)”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가장 큰 효도는 상주와 제주노릇을 할 자손을 낳는 일이라는 유가사상의 발로입니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정화수를 떠놓고 새벽마다 삼신할미에게 빌었던 문화도 바로 “신종추원”할 아들을 점지해달라는 기원이었습니다. 아마 필자 노모도 그런 문화 속에서 필자를 장남으로 낳았을 때 조상에게 면목이 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필자는 밑에 무남독녀만 두었으니 우리 가문의 신종추원이 지속될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맹자에 “세 가지 불효가 있는데 자손이 없는 것이 가장 큰 불효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필자는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른 셈입니다. 거기에다 교회를 다녀서 제사 없이 추도예배만 드리니 노모의 입장에선 정말 조상님 뵐 면목이 없을 것입니다.

필자는 수업에서 삼년상문제를 다룰 때 현대에도 묘지 옆에 움막을 짓고 삼년상을 지키는 효자의 동영상을 보여주며 초점을 지켜보는 가족에게 둡니다. 공자는 제자 재여(宰予)가 삼년상이 너무 길다고 1년이면 족하다고 주장하자, 자식이 태어나 삼 년 동안 부모 품에서 보호를 받았으니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공자의 이 말씀도 고대농경시대 대가족제도 하에서 종손 한 명이 삼년상을 지내도 가정경제에 아무런 지장이 없을 때나 가능했습니다. 현대의 산업사회에서 효자가 부모의 삼년상을 지낸다고 장기휴직을 신청하면 이를 받아줄 직장이 어디에 있겠으며, 실직하면 삼년상 동안 가정의 생계는 누가 책임집니까? 그래서 필자는 고전을 읽을 때 고전의 정신을 읽어야지 문자의 묵수나 예식의 답습은 곤란하다고 강조합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처럼 모였을 때 신종추원을 들먹이며 친척 자손의 결혼문제며 자녀출산을 과도하게 독려하는 이른바 꼰대문화가 아직 존재합니다. 논어의 가르침은 효의 섬김 정신을 확대해서 인간관계의 갈등과 정치적 분쟁을 해소하려는 화평(和平)의 철학입니다. 인간 사랑과 인류 화평에 대한 염원이 읽을수록 구구절절 깊은 감명을 줍니다. 논어 구절을 아랫세대와 갈등이나 야기하는 케케묵은 교조(敎條)로 인용해선 곤란합니다.

논어는 꼰대들만의 책이 아닙니다. 읽고서 새롭게 해석하면 젊은이의 고전이 됩니다. 퓨전 막걸리처럼 역시 독자의 이목을 당기는 깊은 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한 번쯤 작정하고 동양 지혜의 무진장한 보고 논어를 독파하시길 권면합니다. 마침 독서의 계절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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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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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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