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도마 위에 오른 최순실 사태에 대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는 박근혜대통령(사진출처=YTN 화면캡처)

일개 민간인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전대미문의 비리에 국민들은 경악하다 못해 집단허탈에 빠지다...무너진 존엄의 ‘법과 원칙‘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짙어가는 단풍 빛에 따라 날이 더욱 차졌습니다. 새벽녘이나 저녁 무렵 산책길엔 방한복을 잊고 나온 것을 자책합니다. 상쾌하게 가을이 무르익었으나 차가워진 날씨만큼 민심을 싸늘하게 만든 일이 지난주에 있었습니다. 추락하는 권력자에겐 성난 민심에 때 이른 한기를 절감할 것입니다. 오늘은 독자 제위에겐 다소 생소할 미자(美刺)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미자(美刺)란 중국고대시가(詩歌)의 사회적인 기능을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시가를 통해 때로는 통치자의 공덕을 찬미(讚美)하고 때로는 통치자의 실정을 풍자(諷刺)하는 기능입니다. 통치자를 찬양하는 시문은 대부분 문학적인 가치가 없어 평론가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통치자의 잘못을 들춰내고 비판하는 시문은 중국문학의 자랑스러운 자산이며, 포악한 독재제왕이 아니라면 용인된 전통입니다.

역대 제왕들이 당연히 찬미의 글을 좋아했겠지만, 그들은 자신을 비판하는 시문을 통해 민심의 풍향과 시정의 득실을 살펴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말하는 사람은 죄가 없고, 듣는 사람은 충분히 반성한다(言之者無罪, 聞之者足以戒)”라고 했습니다.

몇 주 전 칼럼에서 항룡(亢龍)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항룡은 가장 높이 올랐다가 후회할 일을 저지른 용으로, 운수를 다해 추락할 운명에 놓인 제왕을 상징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항룡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현임 대통령의 몰락입니다. 아직 임기가 1년4개월이나 남아 하늘을 훨훨 날고 있어야할 비룡(飛龍)이 말입니다.

몰락의 기미는 임기 초부터 보였습니다. 퇴근시간 이후엔 외부와의 소통을 일절 끊는다는 전문(傳聞)에 청와대가 봉건시대의 구중궁궐보다 더 깊고 멀어졌다고 느껴 걱정했습니다. 게다가 TV에 비쳐진 국정회의 장면은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 적는 각료들의 고개 숙인 정수리 일색이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에서 받아쓰기 시험 치는 모습 같았습니다. 각료와의 의견소통이 있을 리 만무했습니다. 새 정권에서 토론하고 심지어 격론까지 불사하는 민주적 리더십을 기대했던 갈망이 미리 마신 김칫국이었습니다.

이른바 콘크리트지지층 덕분으로 능력과 상관없이 그럭저럭 버티던 현 정권은 집권당 내에서 비판의 날을 세웠던 당시 유승민 원내대표를 축출하면서 몰락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렸습니다. 집권당 내에 비판 장치를 제거해버린 것입니다. 그런 다음으론 몰락의 재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친박(親朴) 일변도의 배짱공천으로 국민의 공분을 샀고, 총선 패배 후 반성 없는 역주행으로 민심의 이반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이어서 문제가 된 대통령비서실의 우병우 민정수석 한 사람을 지키느라 여론까지 등지면서 때 이르게 정권말기적 증세를 보이더니 결국 최순실게이트로 하루아침에 현직대통령이 항룡신세로 전락했습니다. 여태까지 집권층에 우호적이었던 종합편성의 논객들조차 너도나도 비판의 대열에 편승하여 일제히 대통령에게 돌을 던지는 것을 보면 더욱 실감이 납니다.

『맹자』의 「공손추」하편에 “농단(壟斷)”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 장사꾼이 시장의 상품유통 상황을 파악하려고 시장관리인의 눈을 피해 높은 언덕에 올라가 수요보다 공급이 딸리는 장소와 물품을 혼자만 파악해서 시장의 이익을 독점했습니다. 맹자는 시장 질서를 농단한 이 장사꾼을 “천한 사내(賤夫)”라고 규정했습니다.

민간인 신분의 최순실 씨가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명문여대의 전통과 자존심을 농단하였고, 민간인 신분으로 대통령의 연설문을 첨삭하며 일정을 관리하였고, 문체부는 물론이고 공기업을 비롯한 정부유관단체의 인사와 운영에 관여하며 국정시스템을 농단하였습니다.

일개 민간인이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전대미문의 비리에 국민들은 경악하다 못해 집단허탈에 빠진 듯합니다. 호가호위(狐假虎威)로 치부(致富)한 비리는 국정농단에 비하면 오히려 사소한 편에 속합니다.

최순실씨의 발호(跋扈)는 당연히 이를 수수방관한 대통령의 책임으로 귀결됩니다. 그동안 ‘법과 원칙’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강조하더니 사적 친분의 최측근에겐 법과 원칙을 농단하도록 묵인했습니다. 정권운영에 대한 이유 있는 비판에는 그처럼 귀를 닫았으면서 말입니다.

통치자에겐 원칙의 고수만큼이나 비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비판의 수용이야말로 통치자의 그릇과 수양 정도를 재는 중요한 측도인데, 아마 대통령은 그릇을 키우는 자기수양에 철저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동안 비판을 거부해온 결과가 참담합니다. 권위는 땅에 떨어져 이미 냉동식물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새삼스레 사태를 수습할 조언을 해봤자 다 부질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성난 민심의 끝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는 우리라도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마음그릇을 가지자고 제안하며, 이 그릇이 날로 커지기를 축복합니다. 남의 말을 잘 듣는 것도 자기수양의 한 방법입니다. 아울러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들이 잡룡(雜龍)의 하나가 되지 않으려면 가장 쓴 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장 측근에 두어야한다는 교훈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쉬운 진리이지만 역사는 오류의 전철(前轍)을 반복합니다. 직전 대통령도 비판과의 소통을 소홀히 해 실패한 정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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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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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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