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론은 내 의견도 말하고 상대방 의견도 듣고, 모순을 바로잡고, 상대 장점도 수용하는 정반합 과정이 상식이다. 화면은 기사 내용과 관련없음(사진=100분토론 화면 캡처)

토론은 내 의견을 개진하고 상대방 의견도 듣고, 모순을 바로잡고, 상대 장점도 수용하는 정반합의 과정인데 ‘경멸과 증오로 자기주장’만 반복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지난주는 오래 기다렸던 유럽축구 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이 드디어 시작되어 새벽잠을 며칠이나 설쳤습니다. 필자로선 4년에 1번 열리는 월드컵보다 해마다 열리는 챔피언스 리그 16강 토너먼트가 수준과 재미 양 방면 모두 앞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축구 열기는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하는데 선수들이 입은 유니폼의 소맷자락에 저마다 ‘RESPECT’라는 패치가 붙어있는 것을 종종 봅니다. 경쟁상대를 배려하여 국적·인종·종교의 차이로 차별하지 말고 거친 반칙을 자제하여 상대를 보호하자는 일종의 동업자 정신입니다. 오늘은 맞수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영어에 ‘understand’라는 어휘가 있습니다. ‘under’와 ‘stand’ 두 단어가 합쳐져서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에 서서 상대방을 바라보며 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동양의 ‘역지사지(易地思之)’와 일맥상통합니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다가옵니다. 매일 여당과 야당 간에 설전이 오가고, 판세를 주도하려고 갖은 방법이 동원됩니다. 그 와중에 자기 당의 치적과 정책 알리기는 늘 뒷전이고 상대방의 실수를 틈타거나 흠집을 찾는 네거티브 운동에 급급합니다. 심지어 당내의 파벌 간 공방은 물론이고, 어제까지 동지였던 사람끼리 오가는 설전은 거칠기 짝이 없습니다. 내용을 가만히 뜯어보면 결국 상대방은 타도의 대상이자 소멸의 대상으로 귀결됩니다.

상대를 존중하기는커녕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 판을 칩니다. 패권주의라는 용어가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나만 옳고 너는 그르다는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나라 정치문화는 동업자정신이 실종 중입니다.

한때 TV에서 토론프로그램이 성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모방송사의 ‘백분토론’이라는 프로그램이 유명했고 영향력도 컸습니다. 그런데 필자는 늘 이 프로그램의 명칭이 불만이었습니다. 토론이라면 나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만큼 상대방의 의견도 듣고, 자신의 모순을 바로잡고, 상대의 장점을 수용하는 정반합의 과정이 상식이련만 이 프로그램 토론자 모두 상대방 의견은 아예 들을 생각조차 않고 줄기차게 자기주장만 반복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므로 프로그램 명칭도 당연히 ‘백분주장’이어야 명실상부합니다.

특히 민감한 정치적 이슈가 토론주제일 때 반대의견을 가진 패널을 향한 경멸과 증오의 눈초리는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토론자 대부분이 상대방의 말을 끊고 일방통행으로 자기 의견만 쏟아내는 무례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상대방에게 당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생각과 주장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 주고, 나아가 당신과 같은 부류는 사라져야 이 나라가 잘된다며 훈계하려 나온 선생님 같습니다. 우리도 토론자마다 소매 위에 ‘RESPECT’ 패치를 붙였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어로 맞수를 ‘사대두(死對頭)’라 부릅니다. 직역하면 죽어야 직성이 풀릴 원수라는 뜻이나 사실은 사사건건 맞서는 적수라는 뜻입니다. 나하고 사사건건 의견이 다른 맞수라도 때로는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소신을 굽혀 상대방과 한 패만 되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는『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군자가 되고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끼리만 파당을 짓는 소인배가 되지 말라는 당부입니다.

1948년 무렵에 장제스가 이끌던 국민당정부군이 공산군에 밀려 중국대륙에서 대만으로 쫓겨 올 즈음 장제스의 참모 쉬푸꽌(徐復觀)소장이 사표를 냈습니다. 장제스가 이유를 묻자 쉬푸꽌은 지식인들을 규합해 장제스 당신과 국민당을 비판하기 위해서 저널잡지를 창간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장제스는 자네들은 돈이 없을 것이니 내가 돈을 마련해 주겠다. 대신 나를 비판하려면 대만에서 하지 말고 홍콩에서 하라고 했고 쉬푸관은 이에 응하였습니다.

유명한 『민주평론』이란 잡지가 이렇게 탄생하였고 훗날 대만민주언론의 불을 지피는 초석이 되었습니다. 필자가 존경하는 쉬푸꽌선생의 회고록에서 술회한 내용입니다.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존중과 여유가 돋보이는 일화입니다.

우리네 인생역정에서 라이벌 한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세상에서 양립을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라이벌은 거추장스런 존재임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립니다. 맞수가 사라지면 우리 인생도 심심하고 사는 재미가 덜해집니다.

이번 주는 자기 맞수를 존중하는 여유와 배포를 지니시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아무리 살벌한 선거판이라도 정당대변인이 막말보다 격조 있는 위트로 반대당의 아픈 곳을 찌르고, 방송에서 토론자끼리 서로 품격 있게 토론하는 문화를 향유하는 그날을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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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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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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