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이모우(張藝謀)감독의 ‘인생(人生)’에서 공리와 함께 푸꾸이(福貴)역을 열연중인 중국배우 거요(葛優)

배우에게 잘 생긴 얼굴이란 배역에 녹아들어 관객을 몰입시키는 연기력이 뛰어난 얼굴이다.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녹아든 연기력을 지닌 배우가 미남이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찌푸렸던 날씨가 기어이 가을비를 내리고 길바닥엔 벌써 낙엽이 뒹굽니다.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한 풍경이 여간 을씨년스럽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리를 나서니 고운 단풍이 다투듯 자태를 뽐내고 새롭게 도배한 듯 채색된 산색은 경탄을 자아냅니다. 꽃이 피는 봄의 화사함이 여성 취향이라면 바람에 옷깃을 올리는 가을은 아무래도 남성 취향인 듯합니다. 주위에 가을을 타는 남성이 많은 것을 보면 말입니다. 오늘은 미남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내는 요즘 한 미남에게 빠져있습니다. 목하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TV연속극 『구르미 그린 달빛』의 남자주인공인 박보검이라는 미남 청년입니다. 선한 눈매에 다양한 표정이 재미도 있고 깊이가 있어 너무너무 좋다고 야단법석입니다. 필자는 애송이배우 박보검 보다는 옆 채널 여주인공 최지우의 미모와 성숙한 연기가 좋다며 어깃장을 놓지만 통하지 않습니다. 이미 본 것을 재방송 때 또 보고 심지어 케이블TV의 재삼탕 방영까지 챙겨 봅니다. 심통이 나서 젊을 땐 다 저 정도 생기지 않느냐고 했다가 옆에서 듣던 딸까지 나서 팬들에게 몰매 맞을 망언(妄言)이라며 난리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는 미남이 참 많은 나라 같습니다. 어릴 적엔 남궁원과 신성일과 같은 고전적인 미남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근자에는 장동건과 조인성이라는 걸출한 미남배우를 배출하였습니다. 요즈음은 방영되는 드라마마다 새로운 미남이 등장하여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촌의 수많은 여심을 흔들어 놓습니다. 미남이 한류의 확산에도 지대한 공을 세우는 셈입니다.

옛날 중국에도 서진(西晉)시대의 문학가 반악(潘岳, 247~300년)이라는 미남이 유명했습니다.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기재된 바로는, 반악과 마주치는 여성은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았고 어떤 여성은 넋을 잃고 무작정 그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또한 반악이 수레를 타고 낙양성(洛陽城) 밖으로 놀러 나오면 수많은 여성이 손에 손을 맞잡고 그가 탄 수레를 에워쌌으며, 인파에 막혀 그에게 다가갈 수 없는 여성은 저마다 그를 향해 과일을 던져 매번 수레를 가득 채워 귀가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한류스타에 뒤지지 않는 인기를 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중국 영화나 드라마에 미남배우가 별반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혹시 고(故) 장궈롱(張國榮)을 들어 필자의 말에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기실 장궈롱은 홍콩출신의 중화권(中華圈) 배우이지 대륙출신의 중국배우는 아닙니다. 중국은 엄연히 사회주의체제이고, 영화도 사회주의체제의 지도원칙에 따라 제작됩니다. 그들은 영화를 만들 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란 대원칙을 준수합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배역을 정할 때도 대본에 맞는 이미지와 연기력을 갖춘 배우를 먼저 물색하지 배우의 선천적 외모는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이모우(張藝謀)감독의 영화를 보면, 주연 여배우는 대부분 공리(鞏俐)가 맡지만 주연 남배우는 매 편마다 바뀌는데 미남을 기용하지 않습니다.

미남은 아니지만 출세한 대표적인 배우가 바로 거요(葛優)인데, 그는 중국영화계의 외모불문 풍조 덕분에 대배우의 반열에 오른 인물입니다. 거요(葛優)하면 한국인에겐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 있겠지만 장궈롱 주연의 『패왕별희(覇王別姬)』에 나오는 원대인(袁大人)하면 아! 할 것이고, 공리(鞏俐)와 부부로 나오는 『인생(人生)』이란 영화의 주인공 푸꾸이(福貴)라고 하면 생각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장쯔이(章子怡)와 함께 주연한 『야연(夜宴)』도 우리나라에선 제법 알려진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에서 보듯이 거요는 대머리에 광대뼈가 튀어나온 말라깽이로 추남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언론에서도 아시아 최고의 남배우로 손꼽습니다. 특히 하층 서민 연기가 일품인데다 중국어 발음이 워낙 듣기 좋아 필자는 일찍부터 그의 영화를 섭렵했습니다.

거요의 연기를 볼수록 배우에게 잘 생긴 얼굴이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배역에 녹아들어 관객을 빠져들게 하면 그게 잘 생긴 얼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에겐 외모가 아닌 연기력으로 평단의 칭송을 받는 거요가 진정한 미남배우로 보입니다.

요즘 TV시청자는 김수현이 나오면 김수현 앓이를, 송중기가 나오면 송중기 앓이를, 박보검이 나오면 박보검 앓이를 하곤 합니다. 보는 이의 넋을 잃게 하는 미남이 줄이어 나오는 것은 우리 대중문화의 큰 자산입니다. 하지만 실력보다 표피적 눈요기에 열광하는 미남소비 풍조에선 거요와 같은 추남이 대배우가 될 기회를 잡는 일은 난망합니다.

외모가 연기예술가의 일체를 결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연기가 뛰어난 배우가 우리 영화와 드라마의 깊이를 지켜줍니다. 가을은 책 읽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사색하기에도 좋은 계절입니다. 이번 주는 짬을 내어 연기력이 좋은 배우의 영화나 드라마를 만날 수 있길 축복합니다. 가능하면 거요의 영화도 꼭 한 편 보시길 권면합니다. 세상은 미남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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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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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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