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고대죄(사진=방송화면 캡처)

석고대죄, 전제군주시대의 유물로 민주국가에서 다양한 행태 쇼로 둔갑... 봉숭아학당 코미디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개나리를 필두로 형형색색 봄꽃이 서로 뒤질세라 앞 다퉈 꽃망울을 터트려 눈을 즐겁게 합니다. 역시 봄의 전령은 꽃인가 봅니다. 더욱이 배꽃이 만개한 배나무 아래 동네 농부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참을 먹는 봄 풍경이 정겹기 그지없습니다. 밤이 되면 달빛도 좋아 그야말로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다는 시구가 절로 나오는 호시절(好時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맘때면 늘 하얗게 만개하였다가 며칠 만에 처참하게 시들어 떨어지는 목련화 생각에 미리 애잔해집니다. 호시절에도 최악을 생각하는 우환의식(憂患意識)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환의식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제1야당에서 전국구 공천갈등으로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노발대발하여 사퇴 운운하자 비대위 위원들이 대표의 자택으로 몰려가 잘 모시지 못했다며 석고대죄(席藁待罪)하고 자신들이 사퇴하겠다며 심야 읍소하였다고 합니다.

석고대죄란 신하가 거적자리를 깔고 엎드려 처벌을 청하며 군주의 용서를 구하는 방식으로, 전제왕조시대의 산물입니다. 명색이 민주정당인데 전제시대의 석고대죄가 등장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석고대죄란 말은 원래 사마천의 『사기(史記)·범저열전(范雎列傳)』에 나옵니다. 중국 전국시대 진(秦)나라 재상 범저가 소왕(昭王)에게 정안평(鄭安平)을 추천하여 조(趙)나라를 치게 하였으나 정안평이 오히려 군대를 이끌고 투항하자 범저가 석고대죄를 행했습니다.

이외에는 중국에서 석고대죄를 행한 경우가 드물며, 반면에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석고대죄에 관한 기록이 아주 많습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이 한국 드라마에서 많이 보이는 석고대죄 장면을 신기해합니다.

조선시대 석고대죄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 역모에 연루되어 결백을 밝혀달라거나, 업무상 과실에 대해 사죄하거나, 국왕이 언로를 막는 것에 대해 항거하거나, 자식의 일로 인해 처벌을 자청하거나, 중요한 종묘제례에 불참하거나, 국왕이 붕어(崩御)하였을 때 약원(藥院)에서 관례적으로 처벌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에 행해졌습니다. 하지만 태종처럼 양위교서(讓位敎書)를 내리거나 선조와 영조처럼 대리청정(代理聽政)을 명할 경우 왕세자나 왕세손은 황송하여 석고대죄를 행하는 정치쇼를 연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석고대죄를 가장 많이 행한 이는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였으나 끝내 아버지 눈 밖에 나 쌀뒤주에 갇혀 죽는 운명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이렇듯 석고대죄는 전제군주시대의 유물인데 어엿한 민주입헌국가에서 정치적인 쇼로 재등장하였습니다. 정치인의 사고와 행동양식이 아직 민주화되지 못한 증거입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른바 대통령의 존영(尊影) 파동입니다. 여당의 파벌공천에서 탈락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가 선거사무실에 여전히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자 특정파벌에서 대통령의 존영을 반납하라고 윽박질렀다는 것입니다. 존영이란 일본식 한자어로 남의 사진을 높이 부르는 말입니다. 차라리 어진(御眞)이라고 하지 하필이면 일본어까지 동원해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지 한심합니다. 이를 두고 여당의 대표조차 코미디라고 논평하였다니 봉숭아학당이 따로 없습니다.

『장자(莊子)』의 「열어구(列禦寇)」편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조상(曹商)이란 인물이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진왕의 환심을 사서 수레를 백 대나 하사받고 장자를 만나 으스대었습니다. 장자가 비꼬길, “진왕이 병이 있어 의원을 불러 치료하였다. 종기를 터트려 짜내는 자는 수레 1대를 받고 치질을 핥아주는 자는 수레 다섯 대를 받으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수레를 더욱 많이 받는다. 자네 혹시 임금의 치질을 고쳐주었는가? 수레를 어떻게 그렇게 많이 얻을 수가 있지? 자네는 그 짓을 하였구나!”라 하였습니다. 혹시 조상과 같은 인물이 파벌에 대한 충성의 대가로 여당 텃밭에서 공천을 받았다면 이번 선거로 새롭게 구성될 20대 국회도 별반 기대할 바가 없음은 불 보듯 뻔합니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지식인은 세인들이 근심하기 이전에 먼저 근심하고 세인들이 모두 즐거워한 다음에야 기뻐하는 우환의식을 지녀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세상이 혹여 잘못될까 먼저 살피고 조금이라도 잘못될 기미가 보이면 세상에 경각심을 환기시킬 책무가 있다고 자임하는 도덕적 책임의식입니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 가을이 오는 소리를 미리 듣듯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언행을 보면 나라의 미래가 읽혀져 걱정입니다. 그간의 실정과 패권정치로 국민에게 석고대죄해도 모자랄 정치권이 선거를 앞두고 공천(公薦)은커녕 어감도 이상한 계천(系薦)을 해놓고 연일 시대착오적인 퇴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후안무치도 이런 후안무치가 없습니다.

이번 주는 선거를 앞두고 우환의식을 장착하길 축복합니다. 우환의식으로 우리의 공동체를 최악으로 망칠 출마자가 누구인지 그들의 언행을 예민하게 살펴 가려내고 준엄히 심판해 모처럼 주인노릇 톡톡히 해보자고 제안합니다.

봄날에 열흘 이상 붉은 꽃이 없다는 말마따나 권력이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표적인 꽃임을 권력을 쫓는 사람들에게 이 봄날에 표로써 다시 한 번 일깨워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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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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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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