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스벨트가 골프를 싫어한 데는 당시 전쟁 장관 태프트의 영향도 컸다는데...

운동도 좋아했지만 일을 더 좋아했던 루스벨트, 공적이면서 가치 있는 일에 사명감이 높았다

[골프타임즈=안문석 작가] 영국에서 생긴 골프가 미국에 전해진 것이 1800년대 후반이다. 1888년 처음으로 미국에 골프장이 생겼고, 미국골프협회는 1894년에 만들어졌다. 1901년에 임기를 시작한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이래 버락 오바마까지 19명의 미국 대통령이 있었다. 그 가운데 골프를 안 친 대통령은 네명이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해리 트루먼, 허버트 후버, 지미 카터였다. 루스벨트는 딱 한 번 시도해보고는 그만뒀다. 루스벨트가 보기에 골프는 너무 정적인 운동이었다. 게다가 체통 떨어지는 스포츠였다. 대통령이 작은 공을 따라다니는 것이 영 마땅치가 않았던 것이다.

루스벨트는 운동에 일가견이 있었다. 사냥과 사격을 좋아했다. 아프리카 밀림에 들어가 사자를 잡기도 했다. 복싱을 열심히 해 시합을 벌이기도 했다. 하버드대학 복싱 선수였고, 대통령 재임 시에도 가끔 시합을 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존 매케인(John McCain)이 루스벨트를 존경하는 이유도 권투 때문이다. 매케인도 미 해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복싱 선수로 활약했고 지금도 복싱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대선 기간에도 라스베이거스까지 가서 WBC 수퍼웰터급 타이틀전을 직접 보았다. 여하튼 루스벨트는 그렇게 운동을 좋아했는데, 유독 골프는 싫어했다.

루스벨트가 골프를 싫어한 데는 당시 전쟁 장관 태프트의 영향도 컸다. 일본의 조선에 대한 지배를 인정하는 대신, 1905년에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하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그 태프트다. 태프트는 미국 땅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골프를 민첩하게 배웠다. 160킬로그램의 거구였지만 골프를 받아들이는 것만큼은 빨랐다. 요즘 말로 하면 ‘얼리 어댑터’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골프 예찬론을 펴면서 스스로도 아주 열심이었다. 그런 모습을 국민들은 비웃었다. 거구의 태프트가 허리를 수그린 채 막대기 같은 것을 들고 작은 공을 때리는 모습을 미국인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신문들이 그의 사진을 웃음거리 삼아 싣고, 만평에서 그 모습을 풍자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루스벨트의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졌다. 대신 그는 국정을 챙기는 데 진력했다. 국내적으로 독과점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존 록펠러(John Rockefeller)나 존 모건(John Morgan) 같은 재벌들이 트러스트(기업합병)를 형성해 독점을 강화하는 것을 막았다.

기업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이를 관철시켰다. 그래서 ‘트러스트 파괴자(Trust Bust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노동자를 보호하고, 노사 갈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도 애를 썼다. 국제적으로는 서구 열강들의 중남미 지배를 막는 데 노력하는 한편, 파나마 운하를 건설했다.

러일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기여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루스벨트는 운동도 좋아했지만 일을 더 좋아했다. 공적이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누구보다 높았다. 그래서 미국에 막 들어와 인기를 끌던 골프를 멀리했다.

안문석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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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통령과 골프에서 발췌, 저자 안문석 / 도서출판 인물과사상사 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