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독재에 반대하고 자유민주를 신봉하여 사후에 급진적인 유학자로 평가받는쉬푸꽌 선생

해박한 학식은 학자로서 선망의 대상이고, 권위에 굴하지 않는 꼿꼿한 선비정신은 평생 배울 과제...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며칠간 선선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조석으로 다소 쌀쌀해서 여름내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는 일이 잦습니다. 창문을 닫으니 바깥 소음이 들리지 않아 책읽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책을 통해 옛 성현 말씀을 다시 온고(溫古)하니 좋고, 요즈음 지식인의 새로운 생각을 지신(知新)하니 더욱 좋습니다. 오늘은 사숙(私淑)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숙은 『맹자』의 「진심(盡心)」 하편에 나오는 말로, 훌륭한 인물을 앙모해서 혼자서 그 인물의 사상과 학문을 자습하여 스승으로 삼는다는  뜻입니다. 맹자에 의하면 군자가 남을 가르치는 방식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때맞게 내리는 비처럼 깨우침을 주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인품을 완성시켜주는 방식이 있으며, 재능을 키워주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의문을 해결해주는 방식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학식과 행실로 감화시켜 직접 배우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자가 되게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맹자 자신도 공자를 사숙했습니다. 공자가 서거한지 약 백년 후에 태어난 맹자는 공자에게 직접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맹자의 고향 추현(鄒縣)은 공자가 살던 곡부(曲阜)와 백리 정도 떨어져 있어 어릴 적부터 공자의 명성과 학문을 익히 듣고 흠모해왔습니다. 혼자서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공부하면서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사숙하였다”라며 스스로 공자의 사숙제자로 자부했습니다. 『맹자』의 「이루(離婁)」하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필자도 사숙한 스승이 있습니다. 중국학자 쉬푸꽌(徐復觀, 1904~1982) 선생입니다. 중국의 현대 신유학(新儒學)의 대가이자 철학, 문화, 역사, 문학을 망라한 인문학 전반에 걸쳐 탁견(卓見)을 선보인 학자입니다.

원래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무인출신으로 중화민국의 장제스(蔣介石)총통 참모를 역임하였다가 사임하고 정론잡지 『민주평론(民主評論)』의 주필을 맡아 장제스의 전제독재를 비판하였던 민주투사이기도합니다. 비록 군인이었지만 소싯적에는 후베이(湖北)의 국학관(國學館) 제1회 졸업생으로 유가경전을 비롯한 전통학문에 능통한 수재였습니다. 타이완으로 건너온 중년 이후는 타이완과 홍콩의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습니다.

학자로 변신한 쉬푸꽌 선생은 황하의 봇물이 터지듯 엄청난 연구대작을 쏟아 내었습니다. 특히 후스(胡適)를 비롯한 당시 학술계의 권위자들을 논박한 일련의 학술논쟁으로 일거에 학계의 기린아(麒麟兒)가 되었습니다.

필자는 석사시절 타이완 동해대학(東海大學)의 도서관에서 쉬푸꽌 선생의 학문과 처음 접했습니다. 쉬푸꽌 선생이 돌아가시고 자녀들이 선생께서 한때 봉직했던 동해대학도서관에 선생의 소장도서를 기증하여 따로 ‘쉬푸꽌실’이 있었습니다. 입학 초기에 우연히 들렀다가 전공에 관련된 귀중자료가 많아 매일 들리면서 선생의 저작을 탐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쉬푸꽌 선생의 글 대부분은 한마디로 논쟁적입니다. 당대 인문학술 각 분야 권위자의 저술에 가차 없이 메스를 들이대어 논증의 비논리성과 결론의 허구성을 지적했습니다. 쾌도난마로 비판을 당한 학술문화계 권력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예양(禮讓)을 중시하는 당시 학술계 풍토에선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후발학자였던 선생의 당돌한 도발에 당연히 기존 학계의 반박이 줄을 이었습니다.

선생은 영어가 서툴러 서양학문 특히 철학에 대한 기초 소양이 부족해서 전통만 중시하는 학술국수주의자라는 인신공격도 뒤따랐습니다. 이에 대한 선생의 반박이 흥미롭습니다.

선생은 자신의 영어가 엉터리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일본어 번역본을 통해 서양학문을 깊이 공부하였으며, 학술문화계 권력 당신들은 대부분 서양유학파이지만 정작 서양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은데다 중국인이면서 중국에 대해서도 무지하다고 사자후(獅子吼)를 토했습니다. 어린 필자로선 논쟁의 대가 맹자 이래 처음 보는 말싸움의 기술이라서 통쾌무비하였습니다.

사실이지 쉬푸꽌 선생의 글쓰기는 매우 서구적입니다. 인용문 몇 줄 들고선 ‘그러므로’를 남발하는 여타 당시 저작들과 달리 치밀한 논증을 바탕으로 논리전개가 분석적이어서 마치 서양논문을 읽는 느낌을 줍니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해박한 학식은 학자로서 선망의 대상이고, 권위에 굴하지 않는 선생의 꼿꼿한 선비정신은 평생 배울 과제입니다.

필자는 선생의 저작을 처음 읽고 매료된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숙하고 있습니다. 선생의 저작은 『논어』, 『맹자』, 『장자』와 더불어 필생의 애독서입니다. 몇 해 전에 동료 교수님이 필자의 글쓰기에서 쉬푸꽌 선생의 기운이 느껴진다고 평가해주었습니다. 선생을 사숙하면서 이보다 보람이 없어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괜히 뿌듯해집니다.

가을 초입이라도 독서하기에 좋은 나날입니다. 조만간 제법 긴 추석연휴도 끼어 있습니다. 이번 주는 독서를 통해 평생 사숙할 스승 한 분을 만나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저자와 인격적으로 학문과 인생을 깊숙이 대화하는 즐거움을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가을엔 책을 읽어야 문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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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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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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