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이완 동해대학 중문연구소 1990년 졸업생들과의 단체사진 속 이효정교수(앞줄 오른쪽 두번째 양복조끼를 입고 두 손을 모은 분)

세상일의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말로써 표현할 용기를 갖는 것이 지식의 기본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여기저기서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합니다. 새 학기가 코앞입니다.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필자는 3월 초순 새 학기가 시작되면 이를 봄의 시작으로 인식합니다. 새 봄을 맞는 아가씨의 마음이 유난히 설렌다고 하는데 필자는 새로 맞는 제자들이 궁금해서 매번 설렙니다. 대학이라는 성인의 학문세계 곧 새로운 지식체계에 들어오는 신입생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지식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필자가 존경하는 스승 중에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타이완 중앙연구원의 이효정(李孝定)교수님이 계십니다. 대만유학시절 석사반 때 고문자학(古文字學)을 1학기 배웠을 뿐인데도 인격과 학문하는 자세 모두 교수님을 평생 귀감으로 삼고 존경합니다. 강의를 교과서와 관계없이 당신께서 최근에 발표한 논문작성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셨고, 이 방식이 바로 천하의 명강의였습니다. 논문구상과 자료를 찾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세계적 석학과의 교유(交遊) 이야기와 그들의 이론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셨는데 어려운 고문자학의 핵심내용과 쟁점을 저절로 깨닫게 해 수업이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타이완의 타이중(臺中)에서 타이베이(臺北)로 가는 기차에서 교수님과 동석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중국말도 서툰 필자가 수업시간에 이런저런 질문이 많아 가상하다고 칭찬하시고선 갑자기 대만까지 유학을 왔는데 ‘지식’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당황해서 나름대로 멋있게 대답한다고 견문의 축적이라고 했더니 피식 웃으면서 설명하셨습니다.

견문과 정보가 쌓여서 앎이 되는 것은 맞지만 지식의 본질은 아니며, 시비(是非)를 식별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지식의 본뜻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타이완은 국민당의 계엄통치 하에 있어 언론의 자유가 지금처럼 보장되지 않을 때라서 교수님의 이 말씀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의미심장하였습니다.

타이베이에서 볼일이 끝나고 교수님이 계시는 중앙연구원으로 작별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교수님께서 논문지도하는 한국학생이자 필자의 동급생 부탁으로 며칠 전에 전달한 한국산 건삼을 되돌려 주셨습니다. 당신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직 논문지도가 끝나지 않았는데 선물을 미리 받으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심지어 사모님께서 모르고 인삼 몇 뿌리를 끓여 드셨다면서 약간의 돈까지 덧붙여 주셨습니다. 속으로는 지독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책에서만 읽었던 청렴결백한 선비의 표상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집에 와서 문자의 유래와 뜻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을 뒤져 ‘지식(知識)’이란 글자를 찾아보았습니다. 알 ‘知’자는 원래 화살 ‘矢(시)’자와 입 ‘口(구)’자가 합해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알아 입으로 말한다는 뜻을 가진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다시 말해서 화살 ‘矢(시)’는 매우 빠르고 멀리까지 전달하는 것을 나타내며 입으로 전해지는 인식이라는 뜻입니다. ‘知’는 말을 통하여 얻은 인식을 뜻하므로, 인식하여 알고 있는 사물을 입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로 ‘안다’는 것의 본뜻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혼자만 알지 말고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

알 ‘識(식)’자 역시 ‘言(언)’과 ‘音(음)’과 ‘戈(과)’ 세 글자가 합해져 새롭게 말을 판별하다는 뜻을 갖게 된 회의문자입니다. ‘戠(시)’는 고대 금석문의 ‘戈’자로 무기를 뜻하고 말씀 ‘言’은 판별을 뜻하여 합하여 ‘무기의 소속과 출처를 판별해내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문선(文選)』이라는 책의 「오군영(五君詠)」주에 “시비를 분별하는 것을 ‘識’이라고 한다.”라 하였습니다. 이효정교수님께서 지식이란 옳고 그름을 식별할 줄 아는 것이라고 정의한 말씀이 개인적인 신념이 아니라 고문자학에서 유래하였음을 알고서 필자는 다시 한 번 무릎을 쳤습니다.

대학신입생들이 본격적으로 공부의 세계에 진입합니다. 장래를 위해 정보와 상식을 축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왜 배우는지 근본적인 개념정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인이 되어서의 공부는 세상일의 옳고 그름을 식별하는 능력을 배양하고 이를 말로써 표현할 용기를 기르기 위해서 한다는 기본을 젊은이들이 명심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는 여러분의 지식이 앞으로 더욱 깊어지고 풍부해지길 축복합니다. 아울러 축적된 지식이 세상사의 시비를 가리는 혜안으로 한 단계 더 승화되길 기원합니다. 국회의 필리버스터를 보고 시비가 불분명한 작금의 세태가 한심해서 더욱 더 지식의 본질에 천착(穿鑿)해봅니다.

장창호 칼럼 보러가기➧장창호의 문화 단상

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 본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