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중팔선도. 당나라 전성시대 장안에서 술로 이름을 떨친 여덟 명의 주선(酒仙). 부채를 들고 누워있는 이가 바로 이백이다

술의 청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친구여 좋은 술에 우정이나 담가 볼까나...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겨울치곤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동장군이 찾아와 옷깃을 자꾸 여미게 됩니다. 또한 요 며칠은 한 해를 마무리하자는 모임이 연일 이어져 걸러내는 일도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반가운 사람끼리 모이면 으레 술잔이 오가기 마련이라 이 술자리가 때로는 발걸음을 머뭇거리게 합니다. 오늘은 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필자는 달포 전에 음주수업을 하였습니다. 이백(李白)의 「장진주(將進酒, 자 술을 들게나)」라는 한시(漢詩)를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미리 가져온 술을 우선 10분 동안 마시라고 권했습니다. 소주에 맥주, 막걸리, 심지어 중문과답게 고량주까지 등장하였습니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신나게 마셨습니다. 어수선한 음주 분위기를 추스르고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면서 왜 술을 마시라고 했는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장진주는 주선(酒仙)이라 불리는 이백이 만취의 흥을 읊은 시여서 너희들도 맨 정신보다 술을 마시고 그런 감흥을 좀 더 실제로 느껴보라고 말입니다

▲ 이백취주도

이백은 우리네 인생이 어차피 스쳐가듯 짧으니 한창 때에 마음껏 즐기자며, “한 번 마신다면 삼백 잔은 마셔야지(會須一飮三百杯)”라는 호기를 부립니다. 그리고 “오로지 마시는 자만 그 이름 남기리(惟有飮者留其名)!” 라며 사람의 혼을 빼놓습니다.

이백은 술로 후세에 이름을 남긴 인물로 진왕(陳王) 조식(曺植)을 손꼽았습니다. 한 말 술에 천금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조식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의 차남이자 조비(曹丕)의 동생입니다. 한데 필자는 제왕자리를 놓친 왕자가 술에 빠져 거금을 뿌린 일은 별로 신기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청담(淸談)을 즐기고 기행(奇行)을 일삼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일원이자 「주덕송(酒德頌)」의 지은이인 유령(劉伶)이야말로 기념비적 인물이라고 음주의 청사(靑史)에 올리고 싶습니다.

▲ 죽림7현도

유령은 평소 종복(從僕)에게 수레에 삽과 관을 싣고 자기를 따라다니게 했습니다. 술을 마시다 죽으면 따로 장례를 치를 필요 없이 그 자리에서 땅을 파고 자신을 관에다 넣고 묻어버리라고 당부하였습니다. 술병이 걸린 유령을 보다 못한 아내가 술을 내다버리고 주기(酒器)를 부수면서 끊으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유령은 흔쾌히 천지신명에게 술을 끊는 맹세를 하겠다며 아내에게 제례 술상을 차리라고 명하였습니다.

감격한 아내가 서둘러 제례 술상을 차리자 유령은 얼른 술과 안주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지신명에게 아녀자의 말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외치고선 금방 고주망태가 됩니다. 유령은 이렇게 마시고서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습니다.

그러나 조식과 유령처럼 사책(史冊)에 이름을 올리는 음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명소졸의 곤혹스런 음주도 있습니다. 필자의 대만유학시절 석사 반 때 일입니다. 논문지도교수께서 저에게 교수님댁이 있는 지방도시 신주(新竹)로 첫 지도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댁을 어렵게 찾아가니 다짜고짜 필자를 호텔식당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에 많은 교수님의 친지들이 술자리를 마련하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장진도도

교수님도 아직 젊었을 때라 처음으로 받아들인 외국인 학생을 자랑하는 자리였던 모양입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소개하면서 한국인은 주량이 세다고 추켜세우신 바람에 친지 한 분씩 차례대로 필자 하나를 상대로 건배를 청했습니다. 감히 거절을 못하고 몇 분을 응대한 것까진 기억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교수님께서 등을 두들겨주면서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교수님댁이었고 필자는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말씀으로는 건배에 응하다 술을 이기지 못하고 제가 갑자기 쓰러져 집으로 데려왔는데 밤새 토해서 옆에서 돌봐주고 있노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는데 교수님께서는 이런 필자를 서재로 데리고 가서 이 책 보았느냐, 저 책 읽어라 하시며 본격적으로 논문지도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교수님과 대작할 기회가 없었고, 교수님의 음주 역사에서 저는 영원히 지워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번 주는 술이 없어도 즐거운 연말모임이 많아지길 축복합니다. 우리 모임 문화에서는 술을 피하기가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술의 청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지인에게 술을 강권하지 않는 문화가 하루 빨리 정착되길 또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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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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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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