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한문을 몇 줄이나마 보는 것도 스승의 훈도 덕분인데, 스승은 인생의 지혜이며 세상을 보는 혜안... 훗날 ‘진리를 가르쳐 참다운 스승’이 되고 싶다.

[골프타임즈=장창호 칼럼리스트] 한낮에는 약간 더위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직은 야외활동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지난주에는 한옥 마루에 앉아 가야금명인의 연주를 듣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노(老)명인의 품격 높은 연주도 일품이었지만 명인의 제자가 스승의 연주를 들으면서 울먹이는 모습도 가슴 뭉클했습니다. 필자는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회한도 스쳤습니다. 오늘은 스승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가야금을 연주한 명인은 이재숙 서울대명예교수였습니다. 명인은 연주에 앞서 일흔이 넘은 자신이 휘모리장단이 많은 산조를 연주하는 것은 마치 김연아가 일흔 나이가 되어 피겨스케이트를 타는 격이라고 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연주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정작 휘모리장단이 빠르게 반복될 때 명인의 손가락은 오히려 여유가 있었고 현을 부드럽게 튕기는데도 음이 살아서 필자의 귀에 들어왔습니다.

여유만만한 명인의 연주를 들으면서 공연을 기획한 교수님이 연주회 내내 눈물을 훔쳤습니다. 연주가 끝나고 기획자가 눈물을 참지 못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명인은 대학시절 은사로서 일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저렇게 빠른 곡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도록, 얼마나 많은 연습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스승의 예술에 대한 정열과 프로정신에 감동하여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스승도 설명을 다 들으시고 역시 눈물을 훔치시며 제자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고문대가 한유(韓愈)가 지은 「사설(師說)」은 필자가 애독하는 명문장입니다. 「사설」에 의하면, 스승이란 전리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고 의혹을 풀어주는 존재로, 나보다 먼저 태어나 진리를 들은 것이 나보다 먼저라서 선생(先生)이지 우리가 스승으로 삼는 것은 결국 진리이며, 진리가 존재하는 곳에 스승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필자에겐 대학 때부터 존경하며 따르던 은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한문에 관한 한 필자의 계몽스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필자가 한문을 몇 줄이나마 읽을 수 있는 것도 은사님의 훈도 덕분입니다. 학업을 전수할 때는 엄격한 호랑이스승이었고 강의실 밖에서는 아버지 같은 정을 주셨습니다.

필자가 결혼할 때 서울에서 멀리 포항까지 내려와 주례를 서주셨으며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도 누구보다 기뻐하셨습니다. 모교에 강의를 나갈 때입니다. 수업을 마치면 날마다 교수님댁으로 와서 바둑도 두고 공부이야기도 하고 저녁밥까지 먹고 가도록 했습니다. 바둑은 필자에게 9점을 접는 기력이었지만 남이 본다며 꼭 백을 잡고 두셨습니다. 해학도 남다른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교수님댁에서 바둑을 두고 저녁상 앞에 앉았을 때 은사님께서 느닷없이 논문 한 편을 보여주셨습니다. 무슨 논문이냐고 여쭈니까 필자 선배의 논문인데 필자의 전공분야이니 비판하는 논문을 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은사님께선 필자 선배와 대학원생 논문지도 때문에 오해가 생겨 갈등 중이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데다 인간된 도리로 친한 선배님의 등에 비수를 꽂는 짓은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제자에게 이런 일을 명령하시는 은사님이 너무 야속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왜 못하냐고 짜증을 내셨습니다. 싫다는 말은 못하고 필자의 실력이 모자란다고 둘러대자 은사님께서 화를 벌컥 내시며 “그럼 집에 가게!”라며 축객령(逐客令)을 내렸습니다. 옆에 계시던 사모님도 당황해 하셨지만 만류할 틈도 없이 필자는 밥 먹다 말고 쫓겨나서 다시는 은사님을 사적으로 뵙지 못했습니다.

몇 해 전에 은사님의 부음(訃音)을 매스컴을 통해 들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선 이 시대 마지막 한학자가 별세하였다며 대서특필하였습니다. 달려서 문상을 갔더니 사모님이 놀라면서 반겨주셨지만 장례식에서조차 필자는 그저 문상객일 뿐이고 제자로서 지킬 자리가 없었습니다.

필자도 모르는 분이 수제자의 신분으로 호상(護喪)이 되어 유가족과 함께 상주노릇을 하였습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안아주는 스승이 없습니다. 스승의 가야금 연주를 애틋하게 여겨 눈물을 훔치는 제자교수님이 부럽기만 합니다.

한유의 또 다른 명문장 「잡설(雜說)4・마설(馬說)」은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伯樂)이야기입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재주를 가진 말이라도 말사육사가 미리 알아보지 못하고 보통 말처럼 먹이고 채찍질한다면 천리마의 재능을 발휘하기는커녕 오히려 보통말보다 못하게 되어 끝내 마구간에서 보통 말과 함께 섞여 죽어갑니다.

말사육사는 요즘 천리마가 없다고 개탄합니다. 어제가 스승의 날입니다. 필자도 천리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말사육사가 될까 못내 두렵습니다. 학생의 재능을 미리 알아보고 인재가 되도록 도와주고 싶고 학업보다 진리를 가르쳐 참다운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필자는 종강 때마다 제자들에게 10년 후에 필자가 좋아하는 칼국수를 한 그릇 꼭 사달라고 당부합니다. 10년 후에 필자를 찾아올 만큼 훌륭한 인재가 되어달라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번 주는 안아줄 스승 한 분쯤은 꼭 두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은사에게 미처 감사의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이번 주가 가기 전에 존경의 마음을 꼭 전하시길 바랍니다. 진리를 깨우쳐준 선생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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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호 칼럼리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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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문학박사,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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