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서현 시인] 시드니 공항 근처 절벽 위에는 골프장이 있었다. 그곳은 하늘이 바다를 닮았는지 바다가 하늘을 닮았는지 서로 같은 빛깔로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나이스 샷.

절벽을 끼고 드라이버샷이 포물선을 그리며 시드니의 해안을 따라 날아간다. 육지와 육지 사이를 파고든 바다를 건너서 나르는 볼은 새보다 아름다웠다.

W는 VICTORIA 넘버를 단 작은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다. 차를 도독 맞을 뻔한 후로는 수업할 때나 집으로 들어갈 때는 핸들을 뽑아서 들고 가는 그런 차였다.

털털거리며 아버지를 마중 가는 멜본에서 시드니로 가는 길은 멀고 멀었다. 산길을 가고 있는데 고속도로 풀 섶에서 푸실푸실 불이 붙었다 꺼지고 하는 곳을 보았으나 불이 번질 우려도 없는 곳이어서 지나쳤다.

어디까지 왔을까 곧바로 가야 시드니로 가는 길인데 자그마한 경찰이 지휘봉을 흔들며 길을 막는다. 설명도 이유도 없었다. 그저 신호등처럼 들었다 놨다 할 뿐이었다. 좌측으로 난 길을 택하여 조금 가다 보니 벌겋게 타오르고 있는 하늘이 보였다.

산불이 난 듯했다. 라디오에서는 경쾌한 음악만 흘러나올 뿐이다. 끄르륵 끄르륵 대던 자동차가 멈춰 버렸다. 담장도 없는 길가 집 정원에 긴 호스가 달린 수도가 있었다. 인기척을 내면서 사람을 불렀으나 아무도 없다. 차에 물을 채우고 길을 떠났다. 어디로 가야 할까 길도 잃어버렸다. 지도 한 장을 의존하면서 시드니로 가는 길이었으나 모두 통행금지였다.

하늘은 머리 위 구름까지 벌겋게 타오르고, 하얀 바지는 검은 재가 날려 와 검댕이 무늬를 만들고 있었다. 차는 자꾸 시동이 꺼진다. 어디고 간에 불씨가 날아와서 부슬부슬 붙다가 꺼진다.

길가 가게에 들어가 물으니 가게 주인도 모른다고 한다.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어딜 갔을까 해안가가 나왔다. 검은 재가 날리고 있는 작은 해안가 모래밭에는 비키니를 입은 젊은이들이 윈드서핑을 즐기거나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유로 왔다.

시드니 공항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간 차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골프를 치기로 계획했다. 어차피 시드니 관광도 필요했거니와 당시 서울에서 멜본으로 오는 비행기 직항로선이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블루마운틴 산불 소식이 보도되었다 한다. 우리나라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로 보도하고 있다고 안부를 물어 온다.

정작 이곳은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었다. 서로의 긴 여행에서 몸 풀기를 했다. 바닷바람으로 들여 마신 검은 연기도 모두 날려 보냈다. 멜본을 향하여 다시 길을 떠났다. 한사람의 몸무게를 실은 작은 차는 더욱 힘들어 했다. 새 차를 안 샀다고 걱정하자 충분하다며 핸들을 뽑아 보인다.

하룻밤을 머물다 가기로 하고 국도를 벗어나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입구에 작은 바가 있었다. 묵직한 나무문을 밀고 들어가자 서부의 총잡이 그림과 붉은 입술의 여인이 그려진 그림 앞에 턱을 괴고 있던 뚱뚱한 바텐더가 나와서 의자를 내어 민다.

난로를 중심으로 대 여섯 개의 테이블이 놓여있고 분위기가 푸근했다. 그때 늦은 저녁바람을 몰고 긴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앞치마를 입은 아가씨가 들어왔다. 청바지를 입은 청년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어나 맞이한다. 둘은 팔짱을 끼고 워킹댄스를 하면서 난로가를 맴도는데 그들이 지날 적마다 쇠똥냄새가 났다.

작은 마을에는 숙소도 있었지만 카라반 캠핑장이 있었다. 동화 속 같은 카라반 숙소에서 눈을 붙이고 새벽녘에 길을 떠났다. 얼마만큼 갔을까, 골프장 팻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서있다.

로비에서 맞아주는 직원이 아들을 보고 무어라 한다. 아들은 흔쾌히 그의 말에 따라 로비라운지 한쪽에 있는 옷걸이에서 청바지를 벗고 양복바지로 갈아입었다.

곧바로 필드에서 18홀을 라운딩했다. 부킹도 기다림도 없는 골프 라운딩이었다. 잠시 쉬면서 블루마운틴의 산불이 아직도 타고 있다는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의용소방대원들이 전역에서 몰려들고 있다 한다.

멜본의 졸업식에 가려면 불길을 피하여 가야 한다. 검은 재 날리는 하늘 밑에서 한때를 즐기는 해변가의 청년들이 있었다.

산불을 끄기 위해서 몰려드는 의용소방대원이 있었다. 지휘봉 하나로 길을 막던 현지 경찰관이 있었다. 그리고 산불 속에서 끄르륵대던 낡은 차가 있었다. 국도를 벗어난 산속 마을 두터운 나무문이 달린 beer집의 풍경이 블루마운틴의 산불 속에 겹쳐 보였다.

넓은 땅덩어리는 오직 자기 일에만 충실하는 많은 것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해안가 절벽을 따라 날아가는 하얀 볼이 되어 골프장 출입을 금지시키는 청바지 문화에 끄덕이며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멜본으로 달렸다.

박서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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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시인은...
문학시대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시와수상문학 회원이다. 시집으로는 ‘바람은 혼자 울지 않는다’ ‘해바라기’ 등이 있다.
골프타임즈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박서현의 요지경 골프’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