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서현 시인] 앞 팀이 요란스럽다. 쭉쭉 빠져 주지도 못하는 필드에서 자치기를 하듯 놀고 있는 여자 골퍼의 공이 조금이라도 날면 캐디는 굿 샷을 외쳐대고 동반자는 나이스 샷을 외쳐댄다.

그 목소리가 하도 커서 물오른 연초록 잎이 덩달아 팔랑거리고 꽃잠 자던 새가 놀라서 퍼드득 난다. 머리를 올리려 나왔을까?

넷이 한 팀인 반면 둘이서 나간 걸 보니 일단은 VIP이거나 돈 쓸 날이 많이 남지 않은 사람과 돈을 써주려고 청춘을 할당 받친 사람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까이 가서 보니 둘의 차이가 30년은 족히 났다.

페어웨이에서 알짱대고 있는 팀을 향해 볼을 날렸다. 그리고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뽈! 뽀올~!, 사실 볼을 외치기에 터무니없는 거리지만, 내 짓궂은 장난기에 남편의 핀잔 소리와 더불어 어색하고 정중한 분위가 깨져버렸다. 몇 홀을 돌았을까 그늘 집에 잠깐 앉았는데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는 사장이 말을 꺼낸다.

요즘 부부사이에 위기감이 왔다고, 부인이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며 동조를 구하듯 한다. 싱글인 두 부부. 김 사장과 오 여사는 유난히 주고받는 말이 없었다. 누가 보더라도 남의 짝과 함께 왔다는 오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혼자 웃던 차였다.

오늘, 모처럼의 부부동반 제의에 망설였다. 주책 떨지 말라는 충고가 팁으로 붙어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멱 줄까지는 안 잡고 있더라도 분명 메이저급 한국지사장 부부다.

남편 하나 빼 놀고 어렵거나 무서운 사람이 없는 관계로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지만 명품 컨트리클럽에서 제대로 된 대접받으며 즐겨보고 싶은 유혹에 따라나섰다. 오늘은 입 꼭 다물고 새소리 들으며 잔디밭에서 뛰어 놀리라 다짐했다.

최고의 지성과 재력과 미모를 갖춘 상류급 부부가 파경으로 치닫고 있는 이야기를 필드를 걸으며 들어주었다. 일류대학을 목전에 두고 있는 입시생인 아들을 위하여 부모 전선 이상 없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고 있는 어미사랑을 듣고 있었다.

흔히 자식 때문에 못 헤어진다는 사람들은 이혼이 힘들다. 자식 때문에는 확실히 타당성이 있고 자타가 공인하지만 자식이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나면 자식 혼인에 걸림돌이 될 것을 걱정한다. 부모이혼으로 흠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결혼하고 나면 며느리나 사위 눈치 때문에 이혼을 못한다.

혹여 네 부모를 닮아서 하고 내 새끼한테 핀잔꺼리를 줄까봐 조심하고 그러다보면 늙고 병약해진 배우자와 내 자신 때문에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게 100년 해로 부부애인 것이다.

차분히 체념하듯 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겪고 넘어온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 와중에도 부인의 골프 실력은 대단했다. 흔들림이 없는 샷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는 것인지 내려놓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인의 플레이를 하는 걸 보니 사장의 입장도 은근히 이해가 되었다. 남자에게는 뛰어나고 냉정한 실력자보다 포근하고 따스한 성격의 아내가 제격인데, 또 이렇게 뛰어난 여자에게 밥이나 짓고 설거지나 하고 속옷까지 반듯하게 다림질하여 대령이나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아깝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의 외조가 필요하고 남편은 아내의 따스한 손길이 너무 절실한 부부였다.

앞 팀에서 뷰티풀 샷을 외쳐댄다. 먼데서 지저귀던 검은 등뻐꾸기가 가까이 날아와 외쳐댄다.

홀딱 벗꾸, 홀딱 벗꾸! 호올 딱 벗고!

그래, 홀딱 벗으면 되는 것이다. 부부라는 것에는 잘남도 못남도 없다. 인간의 따스한 본성만 있으면 된다. 너도 벗고 나도 벗고 사장님도 벗고 사모님도 벗고, 마음의 옷을 홀딱 벗으면 인생은 어렵다는 골프보다 쉽다. 부부 사이에는 스코어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 말 아니더라도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결혼이란다. 굿샷, 사장님이 5홀에서 투온을 시켜버렸다. 아마도 이들 부부는 퍼팅만 잘하면 무사히 위기를 넘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굿샷! 굿샷! 사장님 부부의 이글을 위하여!

박서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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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현 시인 은...
문학시대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시와수상문학, 국제 펜 한국본부, 현대불교문인협회 회원이다.시집으로는 ‘바람은 혼자 울지 않는다’ ‘해바라기’ 등이 있다. 골프타임즈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박서현의 요지경 골프’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