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현의 요지경 골프] 마누라를 걸고

[골프타임즈=박서현 시인] 골프 볼이 동이 난듯하다. 볼을 찾아 가방 곳곳을 뒤적거리는 그 남자골퍼는 상큼 발랄한 우리의 옷차림과 달리 꾀죄죄한 복장이다. 바지는 구겨지고 티셔츠는 몇 번을 입은 듯 추레하다.

더군다나 낯가림을 하는지 첫 홀부터 오비(OB)다. 우리는 그 골퍼의 볼이 산으로 들어가 숨거나 벼랑으로 떨어져 버려도 모른 척했다.

여자 셋에 끼어드는 남자는 강심장이거나 심장이 없거나 둘 중 하나다. 아니면 누이들이 많은 집에서 자랐거나 직업이 여자들을 상대하거나 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몇 홀 못 가서 골프공이 바닥이 났는지 썩은 연습장 볼까지 나오는 것이 아닌가. 캐디가 가지고 있던 볼도 동이 났다. 할 수없이, 너나 할 것 없이 가방 속 썩은 공들을 모두 뒤져서 주기 시작했다.

넙죽넙죽 잘 받아친다. 장타 실력인데 어김없이 볼은 오비가 나고 로스 볼이다. 이 어처구니없는 골퍼를 만난 건 화창한 날 전화로 수다를 떨다가 가까운 필드를 가자고 합의 본 긴급회담 때문이었다.

우리는 나비처럼, 벌처럼 필드를 향해 날아갔다. 골퍼 3년 차들인 우리는 한창 물오른 버들가지였다. 주말을 피한 날인데 오늘따라 많은 골퍼의 백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셋이 모이면 선반 위 접시가 떨어진다 했지만 골프를 치러 왔기에 골프장에 걸맞은 레이디가 되어 품위를 지키고 있는데 한 남자가 조인이 되어 들어왔다.

그 남자는 40대 중반으로 비슷한 또래였다. 4인 멤버가 구성되었다. 사무실이 근처인 그 남자는 짬만 나면 현장 실습 겸 숏게임을 하러 나온다는 것이다.

골프 못 치는 이유는 백가지가 있다 하지 않은가. 이렇게 칠 때마다 볼이 제 멋 데로 가는 건 처음이란다.

이 남자 골퍼는 우리가 너무 멋져서 혼 줄이 빠졌나 보다고 낄낄 거리다가 묘안을 생각해 냈다.

공을 댓 개 모아 주고 한 개 잃어버리면 두 개 돌려달라고 내기를 걸었다. 내기? 내기라는 소리에 반색을 한다. 마누라라도 내 걸겠다며 좋다 한다. 그러더니 마누라 뺏길 것에 정신이 들었는지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비상하는 것이다.

볼에 칩이 장착된 양 페어웨이 중앙에 안착한다. 살금살금 홀컵을 찾아 볼이 굴러 들어가는 것이었다.

볼을 날려버린 것이 우리 탓인 양 골프란 프로들과 치면 스코어가 절로 올라가고 비기너들과 치게 되면 똑같은 비기너가 된다며 파플레이를 하면서 우리에게 훈수까지 둔다.

우리는 썩은 볼을 준 대가로 백만 불짜리 강습을 받으며 그에게 준 썩은 볼을 새 볼로 바꿔주면서 합창을 했다.

굿 샷! 나이스 샷!

박서현 시인은...
문학시대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와 시와수상문학 회원이다. 시집으로는 ‘바람은 혼자 울지 않는다’ ‘해바라기’ 등이 있다.

골프타임즈를 통해 매주 화요일 ‘박서현의 요지경 골프’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