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순간을 요행수로 피하기보다 받아들이고 극복했을 때 골프가 재미있는 것은 세상사 기쁨과 슬픔이 골프 안에 있기 때문이다

[골프타임즈=이종철 프로] 여러분 혹시 골프 규칙서를 본적이 있으신가요? 골프가 신사 스포츠이기에 매너와 에티켓을 강조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골프 규칙서에서는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제1장에서 에티켓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골프 에티켓을 전부를 간단명료하게 서술한 ‘경기의 기본 정신(The Spirit of the Games)’입니다. 규칙서의 가장 앞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경기의 기본 정신
골프는 대부분 심판원의 감독 없이 플레이된다. 골프 경기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배려하고 규칙을 준수하는 사람의 성실성 여하에 달려있다. 그리고 모든 플레이어는 경기하는 방법에 관계없이 언제나 절제된 태도로 행동하고 예의를 지키며 스포츠맨십을 발휘하여야 한다. 이것이 골프 경기의 기본 정신이다.

규칙서에 제시된 에티켓은 이렇게 ‘경기의 기본 정신’을 필두로 안전,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배려, 경기속도, 코스의 선행권, 코스의 보호, 그리고 에티켓 위반 시의 징계에 관한 사안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문서화된 에티켓이 골퍼들이 지켜야 할 에티켓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법이 우리생활에 최소한의 도덕이듯이 규칙서에 명시한 에티켓 역시 ‘골프라는 세상 안에서 최소한 이것만이라도 지키자’는 약속입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골프가 단지 신사스포츠이기 때문에 혹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더욱 매너를 강조한다고 해서 매너 있는 골프를 치자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가 매너 있는 골프를 위해 노력한다면 그 행위 자체가 경기력 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요소가 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배려의 힘-행복으로 돌아오는 기쁨이고 고마움
에티켓에서 강조하는 내용은 공통적으로 다른 플레이어들에 대한 배려에 있습니다. ‘배려’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자면 ‘도와주거나 보살펴주려는 마음’입니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참 가치 있는 일이고 흐뭇한 일입니다. 가령, 헌혈이라도 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뿌듯한 마음이 생깁니다. 누군가 나의 혈액을 수혈 받아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우이웃을 위해 구세군 냄비에 천 원짜리 하나라도 보탠다면, 이것은 실천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따뜻함이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익명의 큰돈을 내놓는 사람은 아직도 이 사회가 살아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평생 폐지와 빈병으로 모아온 전 재산을 선뜻 장학금으로 기부한 어느 할머니의 이야기는 나 자신의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돌이켜 보게 만듭니다. 모두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요, 천사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선행은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만듭니다.

주는 사람도 기쁘고, 받는 사람도 기쁘고, 옆에 있는 사람도 기쁩니다. 그 기쁨은 다시 고마움으로, 그 고마움은 다시 행복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뭐 그냥 선순환(善循環)이라고 해두죠. 아무튼 배려와 같은 선행은 마음의 긍정적 에너지를 발산시킵니다. 이러한 이치는 골프장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플레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 동반자의 볼을 같이 찾아주고 / 마지막 사람까지 홀 아웃을 기다려주고 / 동반자의 기쁨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 동반자의 아픔을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 딴 돈이 있다면 흔쾌히 돌려주기도 하고

‘남을 돕는다’는 마음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고나면 뿌듯해지고, 평온해지고, 한결 여유 있는 마음을 누릴 수 있기에 자꾸 하고 싶은 것입니다. 아마도 행복 호르몬과 같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바로 그러한 배려의 마음에서 비롯된 정서적 변화입니다.

직장 상사에게 한바탕 깨지고 나왔어도, 어제의 주식시장이 폭락 했어도, 거래처에서 돈 달라고 성화를 해도, 행여나 새벽녘 골프장 나서는 길에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댔더라도, 우리는 잠시나마 잊을 수 있고, 그 어떤 부정적인 마음상태라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선행에서 비롯된 특별한 묘약과도 같습니다.

배려의 마음은 행복감을 선사해주고, 그 행복은 부정적인 정서를 순화시켜 줍니다. 순화된 정서는 마음의 평온이요 안정입니다. 이러한 심리상태를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바로 긍정적인 마음에서 무한한 집중력과 최고 수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이유
앞서 제시한 ‘경기의 기본 정신’에는 심판원의 감독 없이 플레이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경기위원’이라 하여 심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스포츠에서처럼 항시 지정된 자리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하여 아무런 감시가 없는 상황에서도 플레이는 진행되기 때문에 골퍼에게 규칙을 준수하는 성실성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판원이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에겐 희소식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김사장님께서는 공이 디보트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어느샌가 옆으로 나와 있고, 분명 벙커모래에 푹 파묻힌 공이었는데 한 번의 실수 없이 탈출을 하십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스윙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다면 ‘이런데서 어떻게 볼을 치나그려’ 하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볼을 건드립니다.

티샷한 볼이 OB인가? 아닌가? 누구 하나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가장 먼저 뛰어갑니다. 왜 그렇게 뛰어갈까요?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가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뿐입니다. 그러나 ‘어이 여기 공 살아있네’ 어김없이 공의 생존소식을 타전합니다. 우리는 간혹 이렇게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규칙을 준수하자’는 것이 골프라는 ‘게임의 기본 정신’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꼭 지켜야 할 또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ㆍ진정한 골프실력 향상에 걸림돌이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는 것처럼 한 번 버린 양심은 점점 커져서 더욱더 대담한 범행을 저지르기 마련입니다.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달콤한 유혹에서 헤어나기가 어렵게 되는 것이죠. 이런 과정에 들어서버리면 진정한 실력을 키우는 데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항상 요행수를 바라게 됩니다.

당장 한두 타 요행을 부린다 해서 본인의 베스트스코어를 기록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하기도 어렵겠지만 한다 해도 떳떳하지 못한 거짓 기록이 됩니다. 당장 한두 타 이득을 본다 한들 이 시합에서 합격할 것 같습니까? 당장 한두 타를 속인다 한들 내기골프에서 이길 것 같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캐디 눈치 봐야해, 동반자 눈치 봐야해, 범죄 저질러 심장 떨려, 스코어도 떳떳치 못해, 시합에 통과하지도 못해, 기분만 찜찜해, 이런 것을 꼭 해야겠습니까?

ㆍ신뢰를 잃는다.
차라리 대놓고 범죄를 저지른다면 애교로라도 봐줄 수 있는데, 아무도 몰래 알 한번 까보겠다고?(오비OB나 볼을 못 찾았을 때 남몰래 공을 내려놓는 행위) 으이구 다 보인다구요. 우리는 다 알고 있지만 서로의 신뢰도를 굳이 확인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에 말을 안 할 뿐입니다. 그냥 모르는 척 할 뿐입니다. 그런 것도 모르고, 다 보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자꾸 알을 까고 있습니다.

호주머니에서 볼록했던 공이 없어졌다면 우리는 은밀한 작업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또 하나의 공을 꺼내 호주머니에 장전하는 우리친구의 가련한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으이고 저 미련 곰탱이 같으니, 이렇게 누군가에게 걸리기라도 한다면 이 사람의 인간성과 신뢰는 한 순간에 추락할 것입니다. 이런 데도 꼭 하시렵니까?

ㆍ팀 분위기를 망친다.
룰을 어기는 행동은 팀 분위기를 망쳐 놓을 수 있습니다. 많이들 겪어 보지 않았나요? 자기는 그곳에서 구제를 받아 놓고 ‘나는 안 봐준다’고 옥신각신. ‘give and take’라는 보이지 않는 법칙이 잔디밭 위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너 한번 봐줬으니까 나 한번 봐주라’ 마치 곗돈이라도 타듯 번갈아 불법을 저지릅니다. 공평이라는 명분하에 우리는 공동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적당히 주고받아 라운드가 잘 끝나면 다행인데 어느 한쪽이라도 ‘야야 그것은 못 봐주겠다’ ‘아니 왜 못 봐주냐?’ 하면서 급기야 싸움으로 발전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저놈하고 볼 안 친다!’ 합니다. 뭐 친선라운드야 적당히 봐주면서 그럴 수 있겠습니다만 골프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ㆍ골프의 ‘참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골프의 ‘참 재미’ 중에 하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성취감에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도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무엇인가 해냈을 때, 그 보람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이 됩니다. 파4홀에서 투 온 투 퍼트로 무난하게 파를 하는 것보다 쓰리 온 원 퍼트가 성취감이 더 높습니다. 평범한 쓰리 온 원 퍼트로 파를 하는 것 보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무 맞고 들어와 칩인해서 기록한 드라마틱한 파가 훨씬 성취감이 높습니다.

이런 상황은 정말 버디보다 더한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골프에서 ‘참 재미’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이 있었다면 그것은 ‘참 재미’로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려운 순간을 요행수로 피하기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극복했을 때 골프의 향기는 배가 됩니다.

한 학생이 날을 새워가며 공부하여 시험에 100점을 맞습니다. 이 학생에겐 열심히 공부한 대가로 그 보람은 희열이 되어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옆에 앉은 학생은 열심히 눈을 굴려가며 커닝을 해 100점을 맞습니다. 이 학생에겐 커닝을 열심히 한 보람은 있을지 몰라도 노력한 보람은 느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뭐 머릿속에 남는 것도 없을 테고요. 그리고 공부할 생각은 안하고 또 다시 커닝할 연구만 할 것입니다.

골프에서 ‘재미’라는 요인은 많은 부분에서 찾을 수 있고 또한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우리 김사장님은 공만 똑바로 가면 ‘재미’가 있다고, 캐디와 농담 따먹기만 해도 ‘재미’난다고 하겠지만 골프가 재미있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기쁨과 슬픔을 골프 안에서 맛볼 수 있어 좋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 재미’ 아니겠습니까?

이종철 프로
한국체육대학교 학사, 석사 졸업, 박사과정(스포츠교육학, 골프심리 전공)
現 서경대학교 예술종합평생교육원 골프과정 헤드프로
現 영국을 입다! European Neoclassic 위프와프골프 소속프로
前 한국체육대학교 골프부 코치
前 골프 국가대표(대학부) 감독
한국프로골프협회 회원
골프심리상담사

이종철 프로｜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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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골프, 생각이 스윙을 바꾼다(예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