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문민순 수필가] 빗소리가 유난스럽게 크게 들렸다. 우두둑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무서워 잠이 오지 않았다. 천지가 개벽할 듯 큰 비가 내렸다. 번개가 파란 균열을 일으키고 나면 곧이어 천둥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나는 몽유병 환자처럼 마루로 뛰어나가 내리는 비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또 다시 어두운 하늘에서 번쩍 불빛이 선을 그으면 언니가 자는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때는 왜 그리도 비가 자주 왔는지.

부시장 관사가 있던 동명동을 떠나 우리는 원래 살았던 적산가옥으로 이사를 갔다. 전산가옥은 기억 자 집으로 중간대청이 있고 마당 가운데 연못이 있는 넓은 집이었다. 넓은 땅에 지어진 큰집이었지만 우아한 기와지붕도 운치 있는 초가지붕도 아닌 양철 지붕의 집이었다.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처음엔 난타처럼 들리다가 빗방울이 굵어지기 시작하면 우당탕탕 요란스럽게 지붕으로 내리꽂혔다.

검은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무서운 생각부터 났다. 대지를 향해 강하게 내리꽂는 빗줄기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적의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의 도의원 선거 낙방으로 집안 분위기가 무겁고 칙칙하게 내려앉았다. 그 음습한 분위기만이 아니라 집안의 경제사정도 침체되어 있음에도 아버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서울을 오르내리며 이름 있는 인사들을 만나고 다녔다. 당신의 원대한 꿈을 추호도 거두어들일 것 같지 않았다. 칠전팔기(七顚八起)도 불사를 심산이었다. 아버지의 이런 행보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뜻을 섬기듯 내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아버지가 뭘 하든 어머니의 마음에는 남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끝임 없이 분출했고 우리들에게도 항상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만한 분이 세상에 없다며 자랑과 긍지가 대단하셨다.

그해 여름은 비도 많았고 태풍도 잦았지만 장마가 끝나고부터 뜨거운 폭염이 계속되었다. 양철지붕이 그렇게 뜨거운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대식구인 우리들은 찜통 같은 방에서 잘 수가 없어 피난 나오듯 걸핏하면 마당에 펼쳐있는 평상으로 나왔다. 비가 그치고 나면 밤하늘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총총 빛나는 별들과 밝은 달빛이 어둠을 밀어내 주었고 담장 옆 뜰에서 번져오는 풀잎 향기가 그 밤의 그윽함을 더해 주었다. 이렇듯 온 가족이 평상에 둘러앉아 달보고 별보며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일부는 이야기꽃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어떤 날은 달구어진 양철 지붕을 식히기 위해 양동이에 물을 담아 지붕위에 뿌리기도 하고 호스를 지붕에 올려 흐르게 해 두고는 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으로 들어가 자곤 했다.

그 시절, 여름만 오면 그 고생을 하면서도 우리는 왜 지붕개량조차 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당장 내일의 삶도 걱정인 처지에 지붕개량이 가당치도 않았을 일이지만 의식주를 제외한 그 어떤 것도 우리 집 형편으로는 과분한 허영이며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가끔 고향 갈 일이 있을 때 그 동네를 찾아간다. 지금은 개발의 바람으로 고급 주택가가 들어서 부촌을 이루고 있다. 그 옛날 살던 양철집이 생각나면 문득 테네시 윌리암스의 대표작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가 떠오른다. 세기의 배우 폴 뉴만과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1958년도 작품이다. 달구어진 뜨거운 양철 지붕위에서 팔짝팔짝 뛸 수밖에 없는 고양이의 처절한 몸부림을 잊을 수가 없다. 탐욕과 위선, 불신과 좌절이 난무하는 군상들의 활약은 우리 모두의 삶을 빗대어 뜨거운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비가 올라치면 엄습해 오는 것은 그때 양철지붕위에 타닥타닥 내리던 빗소리가 아버지가 느끼던 절망의 소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도 서서히 떠나갈 준비를 하게 되리라. 화살처럼 흐른 세월과 먼 기억들의 그림자가 새삼 정신을 곧추세운다.

수필가 문민순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수필작가회 이사이며 한국수필 제5회 독서문학상 대상 수상했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 4번선 없는 기타ㆍ사랑에는 향기(공저)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