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최재인 칼럼니스트] 멋진 동양화는 서양화와 달리 주제가 선명하지 않아도 은은하게 전해오는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것은 아마도 ‘여백’이 주는 감동이 커서 그런 것 같다.

골프에서 보통 18홀을 도는 데 4시간 반 정도 소요되나 스윙과 퍼팅 시간은 기껏해야 6초밖에 안 걸린다. 100타를 치더라도 길어야 10분 정도로 나머지 4시간 20분은 ‘세트업’을 하거나 이동 시간이라 골프에서의 ‘여백’도 동양화의 ‘여백’만큼 소중하다고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에서도 공원이나 하천 등 건축이 금지된 곳은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도시의 좋은 ‘여백’이 된다. 그러나 애써 건축가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어떤 도시를 상상해 보면 제일 먼저 많은 건축물로 어우러진 이미지를 떠올린다.

도시라는 커다란 공간의 많은 건축물이 각각의 특성, 구조, 기능, 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그 건축을 둘러싼 광장과 공원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간결하고 멋진 ‘스윙’을 좀 더 섬세하게 보면 ‘그립’, ‘코킹’, 스윙 궤도, 볼의 ‘콘택트’ 등등 하나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건축물들도 서로 잘 어울리는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섬세함’이 완벽하게 이뤄져야 멋진 완성물이 될 수 있다.

어릴 적 서양 건축과 동양 건축을 비교하는 특강에서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열주의 배흘림과 우리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의 배흘림은 시간과 장소를 달리해도 건축 미학적으로 ‘비례’가 같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었다.

특히 건축 공간에서 ‘SOLID(채움)’과 ‘VOID(비움)’이라는 개념은 40여 년 건축가로 살아온 필자에게 계속해서 설계의 묘한 매력을 제공하듯이 골프 라운딩에서 ‘스윙’이 끝나고 남은 ‘여백’은 주변을 둘러보며 사색할 수 있어 스윙 못지않게 큰 매력이 있다.

오늘날 도시에 세워지는 수많은 건축물이 쉽게 보면 다수의 공산품같이 보이지만 그 각각의 건축물 속에는 건축가의 전문적인 고뇌가 숨겨져 있다. 또한 개발업자의 수익성과 위험성의 고민이 섞여 있으며, 많은 건설장비와 노무자의 땀이 따라야 겨우 이루어질 수 있는 소중한 결정체라고 본다.

도시와 건축이 수많은 첨단기술과 자금, 토지, 자재 등이 모여 완성된 결과인 것처럼 골프도 동반자들이 모여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며 각자의 기술로 정성스럽게 한 타 한 타씩 점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골프에서 스코어가 아무리 중요한 결과일지라도 진정 골프를 즐기려면 18홀 하나하나 과정을 중요시하고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골프의 멋과 묘미를 느낄 수 있다.

골프의 중요한 요소는 크게 ‘멘탈’, ‘세트업’, ‘스윙’ 등 세 가지가 있다. 그중에 심리적으로 가장 많이 영향 받는 ‘멘탈’의 중요성은 50%가 되나 정작 중요한 ‘스윙’은 10%밖에 안 된다고 하니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10%밖에 안 되는 ‘스윙’ 속에는 골퍼들이 평생 골치 아파하는 ‘미스샷’이 분명하게 숨어 있다.

대부분 골퍼는 골프채를 잡은 이상 ‘미스샷’과의 인연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다. 연습장에서 잘 맞다가도 필드에서 ‘미스샷’이 속출하는 데 온갖 이유로 좌절하고 자신을 나무라지만 ‘미스샷’은 골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이다.

매번 뜻한 대로 샷을 날릴 수 있다면 누구든 골프에 열광하지 않을 것 같고 골프의 매력도 사라져 오늘날처럼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되지도 않았으며, 골프 산업이 이렇게 호황을 누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맹수들에게도 사냥의 실패가 당연하듯이 골퍼에게 미스샷은 항상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미스샷’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겨 스트레스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맹수들이 거듭된 실패를 거치면서 최상위 포식자로 성장하듯 미스샷은 골프를 잘 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일 뿐이다.

“골프에서 미스샷을 빼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라는 골프 명언이 있다. 그만큼 ‘미스샷’이 시사하는 의미가 크고, 골프채를 놓지 못하는 이유 또한 ‘미스샷’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공감이 간다.

프로들의 멋진 샷에 대해 갤러리들이 환호하며 열광하나 어찌 보면 그 화려함 뒤에는 피눈물 나는 연습이 있었고, ‘미스샷’ 결과를 잘 받아들이고 개선해야 멋진 샷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골프는 구조적으로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그대로 될 때까지 땀과 정성을 쏟다 보면 언젠가 높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

골프 라운딩을 한번 하더라도 부킹, 건강, 시간, 비용, 동반자 등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을 갖추더라도 날씨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 역시 어려워 어느 정도의 운도 함께해야 가능하다.

단지 친목을 위해 라운딩 자리를 마련하려면 누군가 그 어려운 골프장 예약을 해야 한다. 또한 누군가는 그곳까지 동반자를 위해 운전해야 하며, 참가자 누구도 그날 심하게 아프거나 급박한 상황으로 불참하는 일이 없어야 하니 이 얼마나 어려운 ‘필요 충족조건’인가.

돈과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어렵고, 아무리 건강해도 시간과 돈의 여유가 없거나 함께할 동반자가 없으면 그 역시 어려우며, 동반자들 또한 이 조건들을 모두 충족해야 가능하다.

그러니 공이 잘 안 맞으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니 연습을 더 하면 되고, 사는 것이 바쁘면 잠을 조금 덜 자면 되며, 날씨가 나쁘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

그러니 바쁘고 어렵고 힘이 들더라도 일단 라운딩 나선 것을 감사해하고, 귀한 시간을 각자 내서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기회를 가진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해야 하며,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면 세상 모든 일도 그렇게 잘 될 것 같다. <계속>

최재인 건축사

최재인 칼럼니스트  master@thegolf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