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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의 다듬이 소리 91회] 외롭지 않으려고 써버린 낙서

긴긴밤의 무서운 꿈 박소향 시인l승인2022.07.04l수정2022.07.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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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여름비는 강하다. 마치 철갑을 두른 초록숲의 유령처럼 세상을 휩쓴다. 밤의 정적을 천둥과 번개로 깨우고 창을 두드리며 마치 어둠의 형벌처럼 고독의 DNA를 쏟아 붓는다.

슬픔과 고독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한 유일한 생명의 양식은 사랑과 우정이다. 사랑과 우정이라는 건 슬픔이나 외로움을 아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오직 그 사람들끼리만의 다정한 대화나 따뜻한 입김이라는 것을.

사실 비오는날 밤의 요란한 천둥과 번개처럼 그렇게 오열하는 고독과 슬픔의 영혼 앞에 칸트의 형이상학이 무슨 힘이 될 것이며, 엔사이클로페디아의 박식이 무슨 맥을 출 수 있는가.

사랑과 우정으로부터 배신 받은 엉터리 사회의 소외자들 앞에 그 같은 값 비싼 박식이 무슨 쓸모가 있으랴.

고독한 영혼끼리의 대화, 서로 닮은 삶이 얼마나 많은 공감대를 줄 것이며 그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영혼끼리의 불협화음은 얼마나 굴욕적인가를 아는 사람들만의 긴긴 밤의 대화, 지금은 단지 그런 것들이 그리울 뿐이다.

사랑과 슬픔과 고독과 행복의 긴긴 대화가 비록 서론도 없고 결론도 없이 끝나버렸다 하더라도 다정한 말투와 따뜻한 입김이 그 속에 서렸다면 그 대화는 이미 진실로 결론을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렇게 비가 오는 긴긴밤에 나도 혼자만의 이야기로 오늘의 슬픔과 고독을 알리기 위해 몇몇의 벗들에게 낙서하듯 글을 쓰며 들려주고 있는 것 아닐까.

잠이 들어 무서운 꿈을 꾸고 난 후까지.

질풍노도의 바람이 부는구나 / 산은 어둡고 진득이는 비까지 내리는구나 / 새카만 하늘 밑에 울어줄 조등 하나 없이 / 이름만 넋이 되어 떠도는구나

길 뜨기 전 / 문패 옆에 걸어둔 입춘대길이 유언장처럼 나부끼던 그날 밤 / 봄꽃이 오기 전 몰각의 땅에 먼저 가 자폐의 몸으로 지고 있었지

부질없는 이생을 방부제로 덧칠하며 더 산다 하여 / 여자의 자궁 속을 빠져나올 때부터 입고 있던 원죄를 청산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아야 했어

윤리와 도덕이 회칠한 무덤처럼 방자하게 돌아가는 망각의 세상에서 / 철 없이 눈 감고 아웅하는 세상에 섞여버렸으니 이를 어쩌랴

온갖 유혹이 난무하는 21세기 골고다 언덕에서 / 자폐의 덩어리가 되어 비정한 십자가에 못 하나 더 박는 / 조각난 영혼이 되었으니 이를 어쩌랴 

인정받은 오물들이 유혈처럼 낭자하게 증발하는 이 땅에서 / 내장으로부터 퇴출 당한 오물만큼도 못하게 / 편집 안되는 비정한 세월 속에 섞여버렸으니 이를 또 어쩌랴

이승과 저승 천국과 지옥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다가 / 겨우 도착한 한 뼘 비상구 앞에서 허무의 질긴 옷을 입고 불침번을 서는 그럴듯한 혼의 넋두리는 / 떠나고 싶지 않은 이생의 마지막 노래였나 

그날 밤 싸늘하게 파고드는 허와 실의 비애가 / 텅 빈 내장의 공백 속으로 차갑게 주입되고 있었다 / 미궁의 뒷 켠에 앉은 비루한 원혼이 되어 실컷 돌고 돌다 / 백지가 된 얼굴로 눈을 뜬 새벽 / 천정에 붙은 형광색 별들이 에덴의 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바싹 마른 가슴에서 / 불쏘시개만큼 활활 타오르는 열꽃에 취해 / 조각난 비명으로 주정을 부리던 날 밤 / 허영의 디오니소스들이 허해진 내 꿈속을 밤새 뒤지며 / 잠에 취한 영혼을 헤집고 다녔나보다  아~~~~~후.

시인 박소향
한국문인협회, 과천문인협회 회원, 시와수상문학 발행인,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박소향 시인  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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