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산길 양편으로 찔레꽃이 한 아름 꽃다발처럼 피어있다. 지난 주말만 해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꽃망울만 옹기종기 모여 있더니 어느새 활짝 피어 수즙은 듯 배시시 웃고 있다. 어머니의 장례행렬을 뒤따라가며 눈물 흘리던 그때도 산기슭에 하얀 찔레꽃이 분분이 피어 있었다.

알지 못할 것이 사람의 목숨이라고 했던가.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금방 차표를 사지 못해 늦게 달려갔을 때는 어머니는 이미 저승으로 떠난 후라 임종도 못하였다. 안방 요위에 눈감고 바르게 누워 있는 어머니를 보니 마치 잠자 듯 평화로워 보였다. 돌아가시던 날, 아침만 해도 아들 며느리와 산책을 하고 김밥까지 먹었다는 소리를 들으니 그렇게 금방 돌아가셨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오빠 언니가 어머니를 부여잡고 펑펑 울자 내 슬픔도 재방에 뚝 터지듯 와르르 무너졌다.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떠나기 마련이지만 내내 건강하시던 어머니가 그토록 허망하게 돌아가시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머리는 희었지만 허리도 어깨도 한 점 구부러짐 없이 반듯했고 하루세기 식사를 잘해서인지 팔십이 넘도록 잔병치레도 없었다. 어머니의 인생철학이랄지, ‘죽으면 썩을 몸, 아끼지 말라’는 게 평소 자식들에게 가르친 훈시였을 만큼 당신 스스로 집안일을 찾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셨다. 나는 어머니가 백수는 당연히 살 거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다니러 오실적마다 하루세끼 밥한 그릇을 뚝딱 비우시며 밥 반 공기를 겨우 먹는 나를 걱정하시곤 했다.

“젊은 것이 밥을 그렇게 쬐금 먹어 무슨 기운이 쓰겠누. 애미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잘 키울 수 있는 게지….

체구는 작았지만 건강만큼은 타고 나신 분 같았다. 육십 전까지만 해도 낮잠이란 걸 모르고 지낼 만큼 부지런함이 몸에 배여 있어 새벽같이 일어나 일손을 잡으면 종일 놓을 줄 모르고 일을 하셨다. 집안 일이 없을 때는 이웃집 일이며 집안 대소 간의 일을 거두어주기도 하는 등 평생을 열심히 사셨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칠남매 홀로 키우면서도 집 없이 사는 외삼촌 집장만을 해주고 사람을 대할 때는 그게 누구이든 언제나 선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던 방물장수, 옹기장수, 소쿠리장수 등에게도 인정을 베풀듯 잠을 재워주거나 끼니를 챙겨주는 바람에 우리 집에는 언제나 낯선 객들이 떠나지 않았다.

세월의 두께가 깊어갈수록 어머니의 소망은 오직 하나,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 잠자듯 죽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 소원대로 단 하루 누워 앓지 않고 어머니는 내내 건강하게 사시다 84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셨다. 자식이야 조금만 더 살다 돌아가셨으면 하지만 어찌 생각해보면 아파서 오래고생하지 않고 편안히 살다 가신 것이 어머니가 그렇게 소망하던 대로이니 그 또한 인정을 베풀고 산만큼 죽을 복도 타고난 것인가 싶다.

평생을 많이 배우지 못한 걸 늘 안타깝게 여기시던 어머니이지만, 내게는 그 어떤 위대한 분보다도 큰 분이셨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