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원명화 수필가] 4월이 다가는 데도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거기다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리니 외출하기가 겁난다. 심술궂은 날씨를 피할 곳이라고는 서울이든 동경이든 지하철이 그래도 만만한 것 같다. 전동차를 타기 위해 계단 아래로 내려오자 목덜미를 핥아대던 바람은 오간 데 없고 아늑한 훈훈함이 감돈다. 그제야 살 것 같은 편안한 안도감을 느끼며 사쿠라다이역 방향으로 가는 승차장 입구로 향한다.

저만치서 아이가 엉엉 울고 있다. 시멘트 바닥에 두 다리를 쭉 뻗고 주저앉아 눈물바다를 이루고 우는데도 밉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분홍 원피스에 곱게 빗어 내린 생머리 위로 꽂혀 있는 나비 모양의 핀이 앙증맞게 매달려 있다. 온몸에 서러움이 잔뜩 고인 채, 누구의 마음도 비집고 들어갈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서러움에 갇혀 있다. 무엇이 저 아이를 눈물 흘리게 만든 것일까. 그 옆에 한 여자가 방관자처럼 울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울음소리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자 그제야 여자는 허리를 굽혀 앉으며 아이의 설음을 달래주듯 살포시 끌어안는다.

“유즈키! 이제 그만 가자구나”
여자의 부드러운 음성이 아이의 가슴에 파고든 것일까.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엄마의 손을 잡고 일어난다. 울음을 그칠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 준 인내가 놀랍기도 하려니와 한 치의 노여움 없이 모정의 사랑으로 아이를 다독이는 걸 보니 문득 어릴 적 막둥이인 나를 사랑으로 감싸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엄마라면 저래야 한다는 것, 머리로는 알면서도 막상 내 아이가 길에서 막무가내 떼를 쓰면 감정을 다스리기란 쉽지가 않다. 특히 자식에게는 애착이 있어서인지 남들에게는 잘 보이고 싶은 욕심부터 앞선다.

연년생 아이 셋을 키울 때, 나의 지성과 교양은 오간 데 없이 걸핏하면 아이들에게 화를 내곤 했다. 성정이 고약해져 가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어머니는 올라오실 적마다 둘째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려 하셨고 할머니를 따라가기 싫어하는 아이의 불안한 눈빛이 내 가슴을 찢곤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 편한 것만 생각해 어미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어 기어이 어머니 손에 딸려 보내곤 했다. 어미 품을 떠나 있는 만큼 아이는 고집쟁이가 되어 무던히도 내 속을 태웠다.

한 번 울음이 터지기 시작하면 장소 불문하고 두세 시간쯤 제 양껏 울고서야 울음을 그쳤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우는지 그 원인을 찾아 달래주기보다는 지나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바라보는 게 창피하여 아이를 윽박지르거나, 어린 가슴에 대고 채찍 같은 말을 해대곤 했다.

‘너 집에 가서 혼날 줄 알라’ 거나 ‘엄마는 갈 테니까 따라오든가 말든가 네 맘대로 하라며’ 겁주듯 냉정히 나 혼자 걸어갔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를 놓칠세라 더 큰 소리로 울며불며 내 뒤를 따라왔다. 아이의 고집을 꺾어 놔야 한다는 것도 있었지만 급류에 휩쓸린 내 성미를 참지 못해 훈육한답시고 야단치고 소리 지르고 벌까지 세운 것을 생각하면 그때, 어린것들에게 너무 아픈 상처를 준 것 같아 지금도 둘째를 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수필가 박원명화는
2002년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장이며 제9회 한국문인협회 작가상ㆍ연암기행수필문학상ㆍ제39회 일붕문학상을 수상했다. ‘남자의 색깔, 길 없는 길 위에 서다, 풍경’ 외 수필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