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바쁜데 뭐 하러 또 왔니? 고맙다.”

평생 자식을 위해 사셨건만 병원에 누워서도 자식걱정이다.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고통스러운 치료 받으면서 어여 가셨으면 했다. 질기게 누워계시면 안 되는데 하며 안달을 부리던 100일. 병원비는 온갖 검사와 수혈, 영양제로 넘쳐나니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투덜거렸다.

아파도 없는 것보다 누워있는 서방이 났다고, 가시고 나니 그렇게라도 누워계시면 언제든 찾아가 손이라도 만져보고 오련만, 이젠 정녕 떠나신 겐가 싶어 화들짝 놀란다. 유품을 정리하며 손때 묻은 수첩 한 장 한 장 꼭꼭 눌러쓴 글자들을 한 장 한 장 뜯어 불 위에 올리며 훨훨 당신 있는 곳까지 닿으라고 불어본다.

90여년 생을 살다 가셨어도 영원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 영원을 애타게 찾고 좀 더 사셔야 되는데,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노환’이라는 말로 묵인하며 보낸 시간들을 안타깝게 돌아본다. 가을이면 단풍 들어 떨어져 나가는 낙엽처럼 인간도 그렇게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시간. 이제 빈자리에 모여 서로를 보듬는다. 가시는 먼 길에 흰 국화 깔아드렸으니 지르밟고 가시옵소서.

삼우제 날, 증손자는 사진 속의 왕 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할머니, 내가 우주비행기 타고 가서 왕 할머니 데려 올게. 왕 할머니 보고 싶어도 기다려!”

다섯 살 손자 말에 함박웃음 터지며 가슴이 먹먹해온다.

이제 내겐 부모가 없는 고아다. 하지만 자식들이 있으니 어른 노릇을 해야 할 터인데, 어리광 부릴 곳도 푸념 늘어놓을 곳도 없다. 멕시코에서는 11월 1일이 유령의 날이라 하여 죽음과 친해지자고 해골분장으로 축제를 즐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그 먼 곳을 그리워한다. 눈이 짓무르고 가슴이 에이는 그 먼 거리인가?

우주비행기가 아닌 타임머신 타고 이승과 저승을 다닐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소설처럼 영화처럼…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