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물

부러진 나뭇가지 돼지 발톱사이
닭들의 가는 발 사이 여자 하이힐을 뚫고

바람을 끌어 구름을 끌어 소꼬리를 잡아채더니
코뚜레를 잡고 소등을 타고 성큼성큼 걸어
소 한 마리 두 마리 꿀꺽꿀꺽 삼킨다

머리 쳐든 저 기 세고 당당한 몸뚱이 기단 황구렁이
보아 구렁이 먹구렁이 비단 구렁이 징글징글
덧 친 실 구렁이까지 꿀럭꿀럭 쏴쏴쏴 쉭쉭 나른다

닿는 것마다 배 밑에 깔고 유유히 흘러간다
저 멈출 수 없는 따라잡을 수 없는 가속도
모든 것의 경계를 허물고 금을 뭉개고 선을 지운다

막을 수 없는 여편네의 날름거리는 포악한 혓바닥
아버지의 눈물을 아이의 눈물을 보태
머리채를 휘어감은 꾸룩꾸룩 허기진 앙칼진 배

아직도 덜 찬 뱃속을 움켜쥐고 아우성이다
내가 더 배고프다 아니 내가 더 배고프다
배고프지 않은 사람들이 배고프다고 말한다
정작 며칠이나 굶은 사람들은 허기져 말을 못한다
          -저자 정옥임 시 [큰물] 전문-

코로나에 겹쳐 태풍과 홍수가 잦았던 올 여름 방영됐던 티비 뉴스에서 안타깝게 가슴을 조이며 보았던 장면들이다. 불이 휩쓸고 간 자리는 흔적이라도 남지만 물이 휩쓸고 간 자리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난국에 뭔가 열심히 한다는 게 참 우습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코로나와 기상이변이 막는다. 어린이나 어른이나 날카로워 간다. 어쩌다 만나면 짜증나! 소리를 연발한다.

누구는 글 쓰는 일만이 할 일이라고 부추긴다. 어느 단체에 들어라. 천 갈래 만 갈래의 동아리들! 무슨 또 무슨 기부금을 독려하는 그룹이 이렇게나 많은지! 삐죽 고개 내밀었다 나오려도 큰 죄나 지은 것처럼 뒤통수가 부끄럽다. 거리에 나서도 곳곳에서 만난다. 모두 친절하고 따뜻한 미소로 끌어 담으러한다.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어쩌다 분수에 넘치는 약속을 뱉어놓고 돌아서서 후회한다. 근근이 사는 주제에 걱정을 일부러 만든 결과다.

나훈아의 테스형 가사를 적어 산책길 벤치에 앉아 목이 터져라 부른다. ‘이게 무슨 용기람’ 하다가도 한 번 내지르고 나면 속 시원하다. 엄벙덤벙 살아온 내 인생을 되돌아보게 한다.

그 속 시원함으로 근 2년여의 수요 시 연재를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참 기쁘고 즐거웠지만 깊은 마음속에 가라앉는 앙금을 씻어낼 수는 없었다. 누구에겐가 나의 글이 조금의 위로가 되었을까?

바쁜 중에 급조한 숙제같이 고칠 부분이 많아 혼자 안절부절 못했던 기억. 시를 받아놓고 실어주지 못한 분과의 공수표가 한 동안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떻게 만날지 모른다. 그 때를 기약해보련다.

정옥임 시인은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