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

서울생활 반백년
지금도 거머리처럼
혀끝에 붙어 다니는 사투리
교양 없다고 핀잔을 받지만
태생을 속일 생각은 없다

아랫녘
초록 들판 출렁이는 바람소리에
밭두렁 청 보리 익어가고
여물통 워낭소리 장닭 훼치는 소리에
초가지붕 박꽃은 수줍게 피어난다

소나기에 질척이는 고샅길 뛰어다니며

더위 식히던 여름날
울타리 아래 분꽃 채송화 벙글거리고
장독대 옆 텃밭엔 지린내 받아먹으며
상추 쑥갓 호박넝쿨이 쑥쑥 자란다

야생의 잡초처럼 한데 어우러져 키워 낸
정겹고 구수한 고향 사투리

“오매 쩌어그 기뚝에 냉갈 낭당께”
노을빛에 누릉지가 익어가고 있다
       -저자 천영희 시 [사투리] 전문-

천영희 시인은 나의 오랜 친구이다. 여고 동창이다. 그 뿐인가! 한방에서 자취한 룸메이트이다. 천 시인은 나보다 한 살 위여서 내가 감히 생각 못한 것들을 해내곤 하였다. 말도 조곤조곤 타이르는 언니같이 졸가리 있고 따뜻했다. 무엇보다 어릴 적 천시인의 집안 가정 분위기를 엿보았을 때 부모님 사랑과 형제들의 우애가 돈독하여 내가 엄청 부러워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는 결혼한 후 한참 소식이 끊어졌다

2015년에 등단하여 벌써 두 번째 시집(가을을 낚다)을 냈다는 연락을 받았다. 책을 부친다고 해서 내 주소를 문자로 보냈는데 너무 흥분하여 동과 호수를 바꿔 써 세 번이나 수고를 끼쳤다. 며칠 뒤 부군께서도 未知의 흰새 알바트로스를 출간했는데 틀린 주소지로 인해 코로나19 비상시기에 수고로움을 주었다. 그래서 한 봉투에 넣은 두 분 책을 받았을 때 더 귀중하고 기쁨이 몇 배나 컸다. 친구의 시를 읽으면서 링클 인 타임(wrinkle in time), 까맣게 잊고 살았던 마치 6차원에 들어 간 것 같은 착각에도 빠졌다.

시를 짓는 일은 대게는 과거에 들어가는 작업이다. 사투리는 우리가 어릴 적 쓰던 말이다. 천 시인의 말은 맛있다. 그만큼 말을 잘 부리는 사람이다. 나도 참 교양 없는 촌년 취급? 그 당시 도회지 아이들이나 ‘읍내 것?’들이 시골에서 온 학생들을 촌년이라 불렀다. 그런데다 그 촌년 분위기는 계속 이어갔다.

내가 처녀시절 은행 재직 시 “이철호 손님! 2번 창구로 오씨오 잉!” 번호표 뽑는 기계도 마이크도 없었다. 모든 게 아날로그 방식이었다. 거기다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내가 내질은 한 마디 사투리에 고객들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거기다 요즘 쌍둥이 손자들이 “할머니는 왜 말 끝에 잉을 붙여?”

“그랬어?” 매 번 애들이 흉내 내는데 말려야 되나 잘 모르겠다.

“할머니가 자꾸 잉! 붙여도 너들은 흉내내지마! 그러다가 할머니처럼 아무데서나 튀나오면 어쩌려고!”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사투리, 양념 같은 말!

천 시인은 여러 번의 수술을 했고 가끔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는데 시를 짓고 시에 취해 있으면 몸이 아픈 것도 걱정 근심도 확 사라진다는 것이다. 무당이 칼자루에 올라선 것처럼! 시를 안 쓰면 안 되는 친구다. 이 어려운 사회거리두기가 끝나면 친구 영희를 만나 표준말 사투리 가리지 않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 본다.

정옥임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 저작권자 © 골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정옥임 시인은
1996년 ‘문학21’로 등단, 황진이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대시 영문번역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온 시인은 ‘시 읽는 사회를 위하여 나는 시를 읽고 시를 쓴다’ 등 시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