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길의 막전막후] 연극 ‘꽃신’, 어머니 마음으로 보는 100년 여성 잔혹사

연속성을 지닌 옴니버스 형식 연출...‘어머니들의 피와 눈물, 개성 넘친 연기’ 극찬 윤상길 칼럼니스트l승인2018.11.13l수정2018.11.1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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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극단 민예(대표 이혜연)가 창단 45주년 기념 연극 ‘꽃신’(김성환 극작 연출)을 14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학로 ‘극장 동국’ 무대에 올린다. 극단 민예의 제155회 정기공연이기도 하다.

연극 ‘꽃신’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를 관통하며, 민초들의 가족 수난사를 그린다. 특별히 “잔혹한 가족사, 어머니 마음으로 보는 100년의 역사”란 포스터의 메인 카피에서 보듯 우리 여성의 흑역사를 가감 없이 펼쳐내고 있다. 굵직한 근현대사 속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절규, 그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충격적이고 강렬하다.

꽃신‘의 작가는 “승자의 역사, 영웅의 역사에 가려진 가족의 역사, 어머니와 또 다른 어머니인 며느리의 잔혹한 가족사를 보여주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를 다룰 때 정치사, 경제사 등 중요한 인물을 다루면서, 그 안에는 남성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는 고단한 삶을 이겨내며 가족을 지켜냈던 여성의 역사가 있다”라고 말한다.

극중에 등장하는 다섯 어머니의 삶은 글자 그대로 ‘기구한 인생’이다. ‘꽃분’(송정아)의 남편은 매품팔이로 죽고, 아들은 동학운동에 가담해서 죽는다. ‘미자’(김시원)의 남편은 동학운동으로 죽고, 아들은 독립운동 하다가 죽는다. ‘영순’(심소영)의 남편은 독립운동 하다가 죽고, 아들은 빨갱이로 몰려 죽는다. ‘혜숙’(이혜연)의 남편은 빨갱이로 몰려 죽고, 아들은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당해 죽는다. ‘도희’의 남편은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당해 죽고, 홀로 딸을 키운다.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여성 잔혹사를 연속성을 지닌 옴니버스 형식의 독특한 연출로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서의 ‘꽃신’은 단절된 역사가 아니다. 다시는 만지기 싫은, 그렇지만 우리가 간직해야할, 그 구슬을 꿰어 만든 ‘어머니의 목걸이’를 의미한다. 여성의 목걸이가 액세서리가 아니라 ‘코뚜레’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꽃신에 새겨진 매화나 벚꽃 무늬가 어머니들의 피와 눈물이었음을 나타낸다.

잘 짜인 여성 잔혹사를 연기하는 배우들 모두가 내로라하는 배우들이어서 연극‘꽃신’을 응원하는 관객의 기대는 크다. 극단 민예의 대표이기도 한 이혜연은 수십편의 작품을 이끈 연극계의 중진이며, 심소영은 2016년 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신인상 수상자이다. 김연재는 ‘택시드리벌’‘파우스트’등, 송정아는 ‘지옥도’‘고추말리기’등, 김시원은 ‘체크메이트’‘햄릿왕 피살사건’등 작품을 통해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독특한 연기로 주목받는 배우들이다.

제작진 또한 ‘믿고 볼 수밖에 없는’ 베테랑들이다. 작품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성환은 ‘유, 햄릿’‘하녀들의 위험한 게임’등을 무대에 올렸고, 2009년 ‘템프파일’로 D-FESTA에서 금상을, 2013년 제13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 ‘오늘, 식민지로 살다’로 작품상을 수상했다. ‘꽃신’의 음악을 맡은 심영섭 선생은 연극음악이 이제 영화음악 못지않게 작품의 흐름을 주도하는 중요한 수단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템프파일’에 이어 ‘꽃신’의 음악을 맡은 그는 21세기한국음악상(문화관광부), YEPP Music 튜닝어워드 대상, 2009년 올해의 젊은 국악인상(신인상)을 수상한 음악감독이다.

내공이 탄탄한 연출자, 음악감독 등 스태프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들이 ‘꽃신’을 통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에서의 꽃신은 모양이나 여러 가지 빛깔로 곱게 꾸민 한국의 전통 신발을 말한다. (위키백과). 그 시대 꽃신은 모양과 빛깔만 예쁜 것이 아니었다. 곱게 간직했다가 특별한 순간에 마주 하는 설렘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연극 ‘꽃신’이 던지는 꽃신의 메시지는 부끄럽고, 억울하고, 저주스러운, 그래서 슬프다.

최근 방송이 끝난 tvN 드라마 ‘백일의 낭군님’에서 꽃신은 사랑의 증표이기도 하지만 그리움과 이별을 담기도 한다. 세자의 기억을 잃은 평민 원득(도경수)은 홍심(남지현)에게 사랑을 약속하며 꽃신을 선물한다. 이때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하지만 세자 신분을 되찾고 원득이 궁으로 돌아가자 홍심은 그를 그리워하며 꽃신을 품에 안고 오열한다. 이때의 꽃신은 슬픔이고 불행이다. 꽃신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남녀의 사랑이 이런데 가족의 풍비박산을 일생 몸으로 겪은 ‘꽃신’의 어머니의 심경을 우리가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는가.

작품 참여 스태프나 연기자는 물론 관객이 연극을 통해 갈망하는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카타르시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비극을 감상하는 이유가 배우의 정서를 대리 경험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리는 ‘꽃신’이 설정한 이승과 저승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면의 진실과 마주하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상처나 콤플렉스를 끄집어내 치유하려고 할 것이다.

여섯 명의 배우가 순차적으로, 또는 번갈아가며 쏟아내는 기억의 흔적 속에서 어쩌면 오래전 잃어버린 나의 할머니 어머니의 기억을 찾을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 나의 삶, 그리고 나의 상처가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듯 서서히 오버랩 될 테니까 말이다.

윤상길 컬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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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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