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은 고픈 배를 채우고, 가족의 안위를 챙기며 서로를 보듬는 자리

[골프타임즈=노경민 수필가] 식불언(食不言), 밥상머리에선 말을 하면 안 된다.

밥 씹는 소리도, 수저 부딪는 소리도, 음식을 헤집는 일도 하면 안 됐다. 쩝쩝 소리 내는 건 천한 사람들이나 하는 소행이고, 음식을 헤집으면 복이 달아난다고 믿었다.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고, 수저를 놓기 전에 일어나면 버릇없다고 야단맞았다.

우리 조상들은 3덕(三德)이라 하여 식구 수에 세 명 몫을 덤으로 얹어 밥을 짓고 찬도 꼭 먹을 분량에서 덤을 얹어 만드는 것이 부덕(婦德)이었다. 행인이나 걸인이 찾아올 수도 있고, 어렵게 사는 이웃이 가져다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문둥병자와 걸인이 많았던 당시, 엄마는 식구 밥상을 다 들이고 나서도 작은 소반에 밥과 국, 찬을 얹어 중문에 내놓는 걸 보았다.

하루 세 번 먹는 밥상에 온 식구가 모여 할아버지, 아버지 순서로 내리받던 밥상은 따뜻하면서도 엄숙한 가정 의식이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참 많이 바뀌었다. 손자부터 먼저 밥을 챙겨 먹일 참이면 귓가에 들리는 음성. ‘애가 어른이냐? 순서 없이 밥 먹게.’ 하실 시어머니는 안 계시고, 가족 각자 편안한 시간에 들며날며 전자레인지에 휘리릭 돌려 바쁘게 먹고 돌아선다. 가족이 함께 밥 한번 먹으려면 서로의 스케줄을 살펴야 하고, 따뜻한 '집밥'보다 외식으로 퉁친다.

어릴 적 어스름 해 질 무렵이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아이들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 하루 내 묻은 흙먼지 털어내고 코훌쩍이며 기다리던 저녁 밥상. 아버지가 귀가하셔야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상이 들어왔다.

늘 빠지지 않는 김치 말고 노란 달걀 프라이나 생선 한 토막이라도 오른 날에는 두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한 손뿐인 조기에 젓가락이라도 얹었다가는 할머니의 손이 먼저 손등을 치며 ‘밖에서 일하는 애비 몫’이라고 못 박았다. 아버지가 슬그머니 한 젓가락씩 조기를 떼어 자식들 밥숟가락 위에 얹어주면 할머니는 애들 버릇없어진다고 혀를 차셨다.

그 시절엔 밥상에서 빠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식구가 다 둘러앉아야 어른들도 수저를 들었다. 밥상은 고픈 배를 채우기도 하지만, 가족의 안위를 챙기면서 서로를 보듬는 자리였다. 따뜻한 밥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으로 챙기던 한솥밥의 가족, 그 시절이 요즘에 더 그립다.

할머니가 그립고, 한 젓가락씩 조기를 떼어주던 아버지가 보고 싶다.

노경민 수필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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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 수필가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 시낭송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간결한 문체의 정갈한 수필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