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윤상길 칼럼니스트] 영화팬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누아르 영화(Film Nor)'에 빠져든 경험이 있으리라. 고상한 인품을 지닌 신사 숙녀,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며 마구잡이 인생을 사는 건달들을 막론하고 말이다.

주인공의 일탈, 음침한 뒷골목, 인성이 배제된 야수성 같은, 틀에 박힌 일상생활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을 이들 영화가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가운데 대리만족을 경험할 수 있어서, 한번쯤 이 일탈에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다.

'누와르'는 '검은, 어두운. 우울한' 의미를 지닌 프랑스어다. '필름 누와르'는 범죄를 암시하는 음침한 도시를 배경으로 부패와 폭력이 만연한 암흑세계를 다룬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사실 ‘필름 누아르’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장르의 영화들은 현대의 도시를 배경으로 범죄에 엮인 사람들을 그린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어떤 인물들은 잠깐의 그릇된 판단으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어떤 인물은 사랑에 눈이 멀어 나쁜 길에 빠져들기도 한다.

이런 누아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사회 안에 잠재된 어둠의 요소들을 짚어보게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평소 마주치는 보통의 일상 뒤에 숨은 비일상의 이미지와 생생하게 마주하는 것이다. 이런 강렬한 경험은 우리에게 잊기 힘든 영화 감상이다.

필름 누아르 작품들은 신경증적인 불안에서 시달리는 등장인물을 내세워 인간성의 끝없는 추락을 보여주는 서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빛과 어둠의 선명한 대조와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아 음산한 톤과 무겁고 우울한 느낌의 시각적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것도 특징이다.

누아르 영화에 관심있는 영화팬이라면 이번 주 서울 종로 서울극장 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되는 '다크 시티 : 필름 누와르 특별전'에 가보자. "검은 그림자에 빛을 드리운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다'라고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은 이번 특별전은 7월 6일~23일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최로 열린다. 영화진흥위원회와 서울시 서울영상위원회가 후원한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필름 누아르 표현주의적 테크닉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빌리 와일더 감독의 '이중 배상'(1944), 빌리 와일더 특유의 블랙코미디 '선셋 대로'(1950), 미국 B급 영화의 제왕'으로 불리는 에드가 G. 울머 감독의 '우회'(1945), 당대의 이상적인 어머니상을 뒤흔들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리게 한 마이클 커티스의 도전적인 작품 '알드레드 피어스'(1945) 등 모두 13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들 작품은 모두 도시의 어두운 이면을 자양분 삼아 만들어진 명작들이다.

이밖에 ‘티 맨’(안소니 맨 1947), ‘미국의 암흑가’(사무엘 풀러, 1961), ‘키스 미 데들리’(로버트 알드리치, 1955) 등 1940~60년대 미국 사회의 무의식 속에 녹아 있던 공포를 보여주는 작품들을 통해 도시라는 공간이 필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어둠의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다.

특별전은 영화 상영 외에 전문가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 프로그램도 준비했다. 찰스 비더 감독의 관능적인 누아르 '길다'(1946) 상영 후에는 한창호 영화평론가와의 시네토크가 이어진다.

또 '검은 겨울'(1946), '어두운 통로'(1947), '고독한 영혼'(1950), '살인 방패'(1954), '빅 콤보'(1955), '미국의 암흑가'(1961) 상영 후에는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가 영화를 소개하는 특별한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윤상길 칼럼니스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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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윤상길은
부산일보ㆍ국민일보 기자, 시사저널 기획위원을 역임하고 스포츠투데이 편집위원으로 있다. 장군의 딸들, 질투, 청개구리합창 등 소설과 희곡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