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기자] 운동선수들은 자기와의 지독한 싸움을 통해 인간승리라는 기적적인 우승을 이루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들의 우승 뒤에는 어떻게 힘든 시간들을 극복해냈는지 어떻게 연습했는지에 대해 다양한 스토리와 그럴듯한 영웅담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그 영웅적 주인공이 어려운 가정 형편을 딛고 인간승리를 이루어낸 경우 대중들은 어떤 경우보다도 특히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의 승리에 감동하고 기뻐한다. 그리고 그에게는 분명 그만의 남다른 인간적인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는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대중의 심리를 잘 아는 언론의 기자들은, 선수들이 경기를 마치고 우승을 거머쥔 순간, 가장 정신이 없을 때 달려들어 질문을 퍼붓고는, 이때 무심코 한마디 뱉은 것을 가지고 침소봉대하여 주인공의 영웅담에 걸 맞는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들어 대서특필한다.

골프선수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연장 혈투 끝에 극적인 우승을 거둔 뒤, 독특하고 혹독한 아버지의 훈련방식이 비하인드 스토리로 거론됐다. 그녀는 하얀 맨발 투혼의 전설을 남겼다. 그 전설담의 하나로 어린 시절 공동묘지에서 훈련을 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 됐다.

담력을 키우기 위해 공동묘지에다 텐트를 치고 밤중에 연습을 시켰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어린 딸아이를 한밤중에 공동묘지에 데려다놓고 연습을 시켰다니 생각만 해도 으스스한 이야기다. 그런데도 박세리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오직 자신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고 헌신적으로 매달려 노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더 열심히 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세간에 전설처럼 그리고 골프선수의 정설처럼 알려진 이 에피소드가 거짓이라는 게 밝혀졌다. 박세리가 은퇴식을 앞두고 "저 공동묘지 훈련 안 했어요, 따라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박세리는 은퇴식을 앞두고 공동묘지 극기 훈련은 와전된 이야기라며, 공동묘지에서의 연습은 안 해봤다. 다만 예전에는 산을 깎아 골프장을 만들었기 때문에 근처에 묘지가 있는 경우가 많아 밤늦게까지 연습을 하고 내려오면 근처에 무덤이 보이고 으스스 했었다는 이야기가 잘못 전해진 것 같단다. 그런데 후배들이 훌륭한 골퍼가 되기 위해 반드시 공동묘지에서의 연습을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것처럼 자랑스레 말했다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었다고 했다.(골프타임즈 2016년 10월 18일자 기사 참조)

육상의 임춘애는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때 800m, 1500m와 3000m 경기에서 우승하여, 한국 여자 선수 최초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같은 대회에서 바로 다음날 3000m 결승에서도 앙상한 몸으로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한 뒤 울음을 터트리며 맨발로 트랙을 돌았다.

3관왕을 휩쓴 역사상 대한민국의 유일한 선수이면서도, 앙상한 몸매이고 맨발로 트랙을 다시 도는(갑자기 멈추면 심장의 무리가 오기 때문임) 그녀의 모습을 보던 시청자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런 임춘애를 더 유명하게 한 것은 가난한 가정형편과 한 신문의 머리기사 때문이었다.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먹는 애들이 부러웠어요”

이 머리기사로 온 나라 국민들은 눈물을 적셨고 임춘애는 배고프고 불쌍한 ‘라면 소녀’로 유명세를 타며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즉각 다음날 신문에서는 ‘서울우유에서 임춘애에게 우유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계속 대주기로 했다’라는 기사가 실리게 된다.

이후 임춘애는 ‘달려라 하니’라는 가난한 고아 마라토너 ‘하니’의 이야기인 만화의 주인공이 됐고, 그녀의 이야기는 우유와 라면 신드롬 붐을 일으키며 온갖 이야기로 패러디되어 각 방송의 코미디뿐만 아니라 영화 ‘넘버3’에서도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임춘애가 전과 같은 이렇다 할 기록 기사가 없자, 항간에서는 라면을 먹다가 흰쌀밥을 먹으니 배가 불러서 안 뛰는 거다. 연금도 받고 배부른데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고 험담을 해댔다.

그런데 몇 달 전 임춘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님을 밝히며 그간 잘못 알려진 소문들에 대해 반박했다. 항간의 오해와는 달리 그녀는 그 후로도 10년 이상 선수생활을 해와 노장소리를 들을 정도의 선수였단다.

또 신기록을 세우고 받게 될 상금이 1억 5천만 원이었는데 이것도 일부만 지급됐고 나머지는 은퇴 후에 지급이 되는 거였기 때문에 배가 불러서 그만 뒀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잘못된 소문이 본인에게 얼마나 상처가 됐을 지는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라면 소녀 역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라면은 간식으로나 먹었을 뿐, 대표선수 때는 몸보신을 하느라 삼계탕, 도가니탕 등을 주로 먹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라면소녀라는 말에 본인이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운동선수들이 나트륨과 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라면만 먹고 운동을 할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녀는 국가대표 선수가 아닌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누구나 알만 한 것을 이런 잘못 된 언론플레이로 인해 애꿎은 선수만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런데 더 놀랄 일은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 우유 먹는 애들이 부러웠어요”라는 이 말을 임춘애 본인은 전혀 발언한 적이 없다는 거였다. 임춘애 학교의 육상부 코치가 육상부의 열악한 환경을 이야기하며 나온 이야기였단다. “육상부에 지원이 부족해서 간식으로 라면밖에 못 먹이고 있다, 좀 좋은 학교는 우유도 먹이는데, 우유 먹이는 학교가 부럽다.”라는 식으로 기자에게 이야기 한 것이 왜곡 되어 임춘애를 비롯한 모든 육상부 선수들이 '라면만 먹고 운동을 한다, 우유 먹는 애들이 부럽다’ 고 기사를 쓴 것이 다시 와전되어 그처럼 전달된 것이란다.

그 후 임춘애가 그 기자에게 왜 그렇게 왜곡시켜서 기사를 썼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열악한 육상부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좀 더 후원을 많이 받게 해주고 싶어 인터뷰 내용을 심하게 과장해서 썼다”라고 밝혔단다. 게다가 대중은 영웅 스토리를 원했고, 그 이야기가 가난을 극복한 가슴 뭉클한 스토리였던 데다가, 임춘애 선수의 앙상하고 가냘프게 생긴 불쌍해 보이는 어린 소녀의 이미지까지 합세해 하나의 전설이 만들어지고, 80년대라는 암울한 사회적 상황까지 겹치면서 사람들은 이러한 라면 소녀에게 위로받고자 더욱더 열광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라면 소녀’라는 이 각인이 너무 커서,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녀는 이 타이틀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당사자가 아무리 해명을 해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한다. 최근 어는 인터뷰에서 그녀는 “제가 ‘라면 소녀’로 불리며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처럼 되었어요. 당시 체력보강을 위해서 도가니탕과 삼계탕은 물론 뱀탕까지 먹었는데 라면만 먹고 어떻게 뛰겠어요.”라고 했다.

그런데 몇 해 전 라면 스토리가 또 다시 부활하는 사건이 생겼다. 지난 2012 런던올림픽에서 도마 결선 부문 금메달 쾌거를 이룬 양학선 선수가 금메달을 딴 후, 평소에 ‘너구리’ 라면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된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양학선 선수가 집에 가면 어머니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너구리를 끊여주신다”라는 기사가 실린 것이다. 이후 신문기사에는 “농심 측이 너구리라면 100박스를 양학선 선수에게 선물했으며, 앞으로 너구리라면을 평생 무상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실렸다. 그러면서 대중들 사이에서 갑자기 너구리 붐이 생겼다.

개그 프로에서도 한 개그맨이 "수영아, 이번에 올림픽에서 금메달 딴 체조선수 양학선 선수 있잖아. 어떤 라면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그 라면 회사에서 라면을 엄청나게 보내줬대" “저희 아빠와 아들도 그 라면 좋아해” “부럽다”라는 식의 패러디가 봇물처럼 이어졌다. 십 수 년 만에 임춘애를 잇는 제2의 라면 신화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농심 너구리 발암물질” 사건이 터지게 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농심 측의 ‘너구리’ 리콜이 이루어지면서 네티즌 사이에서는 양학선 선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기사 댓글에 “농심은 양학선 선수에게 평생 뭘 선물한 거냐.” “너구리 소식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양학선 선수. 농심 정말 실망입니다.” “너구리 좋아하신다던 양학선 선수 어쩐대요.” 등의 라면제조사에 대한 원망과 악성댓글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양학선의 어머니는 한 방송에 출연해서 라면에 얽힌 오해를 해명했다. 양학선이 라면만 먹는다는 말은 오해이며, “양학선이 훈련 때문에 기숙사 생활을 많이 했는데, 거기서는 라면을 못 먹게 하니까 라면이 많이 그리웠다고 하더라. 그래서 양학선이 집에 오게 되면 제일 먹고 싶은 게 라면이라고 했다”며, “이 얘기를 간단하게 대답한 것이 와전되어 일이 커졌다.”고 했다. 즉 양학선이 금메달을 딴 직후에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집에 오면 너구리 끓여줄까?”라는 말을 남겼는데, 양학선 본인도 이 말이 그렇게 큰 이슈가 되어버려 너무 놀라워했다고 했다.

축구의 박지성 선수는 유명세를 타고나서, 어릴 때 아버지가 개구리 즙을 해서 먹였다는 얘기로 유명하다. 이 또한 루머가 아닐까? 하지만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이것은 사실이란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박지성은 웃으며, "네 사실입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축구선수가 꿈이었는데, 체구가 작고 몸이 약했다. 그래서 개구리 즙을 마시면 키도 크고 더 강해진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가 개구리를 잡아 즙을 만들어 주었다는 얘기가 박지성의 전기에도 나온다. 이 때문에 종종 박지성은 환경단체로부터 이제는 “개구리 잡아먹지 마세요. 개구리를 보호해야합니다. 라는 충고를 점잖게 듣고 있으며, 박지성도 이제는 더 이상 개구리를 잡아먹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김기은 기자｜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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