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김기은 소설가] 흘끗흘끗 남자의 형색을 뜯어보았다. 표정이 익었다. 아까 밖에서 본 그 사람 같았다. 대체 얼마동안 저런 생활을 하면 표정이 저렇게 변할 수 있을까. 허공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는 그의 동공에는 체념조차 없었다.

그가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희번덕거리는 눈동자에는 악의적인 무상함이 담겨있었다.

남자의 의자아래 발치로 때에 찌든 바퀴달린 까만 여행용 캐리어 가방이 놓여있었다.

‘요즘은 노숙자 보따리도 꽤 고급이네’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폴리카보네이트인가 뭔가 하는 고급 재질 대신 천으로 된, 유행이 지난 것이었지만, 불행하게도 나는 아직까지도 그런 캐리어조차 끌고 다녀본 적이 없었다. 여행이라야 배낭을 메고 기껏 강원도나 춘천 같은데 가서 하루 이틀 자고 오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캐리어 정도라도 끌고 다니려면 하다 못에 사이판이라도 가거나 못가도 제주도 정도쯤은 가줘야 될 텐데 말이다.

내 처지가 노숙자만도 못한 것 같아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오빠도 저러고 다녔을까?

또 오빠 생각이 났다.

올케가 오빠를 찾고 싶으면 짐작되는 곳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했을 때, 나는 가보지 않았다.

“그래? 어디 있는데?”

“확실친 않고 서울에 애들한테 갔다가 전에 우리 살던 집 주인 아주머이를 만났는데, 영등포역 2층 거기 육교같이 해놓은데 지나가다가 느그 오빠 똑 닮은 사람 봤다 카더라. 느그 오빠 그리 됐는 줄 모르고, 설마 경이 아빠겠나 싶어 얄굿다 카고 그냥 지나왔다 카테. 거기 영등포 쪽에 가면 공원이고 어디고 노숙자들 천지 삐까리로 깔렸다. 궁금하면 함 가봐라.”말하자면 확실치도 않은 ‘카더라’식 정보였다.

“언니가 한 번 가보지 그래?”

“야! 내가 미쳤나? 이혼한 전 남편 찾을라꼬 기웃기웃 노숙자들 속을 헤집고 다니게. 생각만 해도 무섭어 죽겠다.”

어딘지 대충 알거는 같았다. 영등포 그 통로에서 마주친 노숙자들이 떠올랐다. 얼마 전 그 쪽으로 갈 일이 있었다. 역에서 내려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 롯데리아 크리스피에서 지인을 만났다. 햄버거를 먹으며 영등포가 많이 발전했다고 감회어린 지난 얘기를 했다. 그리고 일어나 2층 통로에서 롯데백화점방향으로 가는데 노숙자가 한 줄로 잔뜩 줄지어 있었다. 긴 통로가 거의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한 노숙인 여자가 등에 배낭과 그 위로 돌돌 말린 이불을 지고 박스 같은 것을 잔뜩 껴안고 계단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 여자랑 부딪힐 뻔 했다. 여자가 나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노숙인 한 사람이 돈을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집단으로 몰려 있어서 그런지 술이 취해있어 그런지 그들은 그래도 욕도 내뱉고 섬뜩할 정도로 눈빛에 증오가 번뜩였다.

“눈 마주치지마세요. 앞만 보고 가요. 쳐다보면 시비 건다고요.”

“잘못하단 해코지 당해요. 저 사람들 겁날 게 없거든.”

같이 걷던 일행이 귓속말로 주의를 주었다.

긴 통로를 지나는 내내 머리가 쭈뼛 서며 모골이 송연했다.

나는 영등포가 싫다. 그곳은 내 기억이 머문 곳 중 가장 나쁜 세계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가족은 쫄딱 망해서 그 동네로 이사를 왔다. 연탄불을 파는 가게, 구멍가게, 쪽방촌이 즐비한 골목들. 첫 인상부터가 끔찍했다. 전에 살던 담장과 철대문이 늘어선 주택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이사 온 집을 가려면 골목을 지나가야 했다.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만한 작은 골목은 미로처럼 꼬불꼬불 이어졌고, 길치인 나는 그 골목만 들어서면 번번이 길을 잃고 엉뚱한 쪽으로 나와 버렸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시대에 세월이 멈춰버린 듯, 그 동네엔 집집마다 재래식 변소가 있었다. 가끔 똥차가 와서 호수를 들이대고 집 안으로 들어와 문간의 변소에서 오물을 빨아내는 날이면 온 동네가 오물 냄새로 진동을 했다. 꼬불꼬불 이어진 좁은 골목길은 호수가 닿지 않아 똥차 아저씨들이 오물 지게를 지고 퍼 날랐다. 거리엔 지고 가다가 흘러넘친 오물이 질퍽거렸고, 그들이 가고 나면 연탄재가 오물에 짓이겨져 흩어져 있었다.

나는 그 동네가 끔찍했다. 그래서 중학생 사춘기 때는 수없이 가출을 꿈꾸기도 했었다. 보자기를 펼쳐놓고 속옷이며 겉옷 이불을 올려놓고 엄마 몰래 몇 번이나 보따리를 쌌다가 풀다가를 반복했다. 이상하게 보따리를 싸서 옷장에 숨겨 놓기만 하면, 호랑이 같던 엄마가 그날따라 내게 유난히도 잘 해줬다. 전기구이 통닭을 사주기도 하고, 과일을 깎아 접시에 담아 오기도 하고... 그러면 마음이 약해져서 슬그머니 보따리를 풀어버렸다.

캐리어를 든 남자를 보니, 어쩌면 그 남자의 어린 시절이 나보다 더 고급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등포도 재개발이 되어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노숙자들의 아지트 같던 그 통로, 아직도 남아있는 쪽방 촌 때문에 나는 아직도 그 땅이 싫다. 그날의 기억은 오래된 빵 하나를 무심코 베어 물었을 때 입 안에 퍼지던 곰팡이 냄새처럼 기분이 더러웠다. <계속>

김기은 소설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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