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하 작가] “그래, 노조 탈퇴서는 제출했나?”

“네, 아무렇지도 않던데요. 저는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어요.”

“그럼! 그게 무슨 대수로운 사건인가? 노조가 싫어서 노조를 떠나겠다는데…, 지들이 무슨?”

“총문가, 그 가시나 있잖아요. 제가 탈퇴서를 내놓자 놀라는데…, 몸을 부르르 떨더라고요. 마치 둔기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이….”

“허허, 그래? 노조위원장은 없었나?”

“네, 안 보이던데요.”

“아무튼 잘했어. 자,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잔!”

배창호가 먼저 건배를 제의한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처럼 술잔을 부딪친다.

“그나저나…, 다음 달 노보에 제 이름이 나올까요? 자랑스러운 탈퇴자가 혜성처럼 출현했다고….”

“아마, 안 나올걸. 자식들은 노조 가입만 축하한다고 까발리지, 탈퇴는 감출걸.”

“그거야말로 정말 앞뒤가 안 맞는 거 아닙니까?”

“그 자식들이 그런 인간들이란 걸 이제 알았나? 자신들만의 출세를 위해 노조 활동을 하는 새끼들인데….”

“아무튼, 앞으로 누구 눈치 볼 것 없어. 우리 사무실 직원들이 묘한 시선을 주더라도 개의치 말게. 이른바 자네를 ‘왕따’시키더라도 신경 쓰지 마.”

“하하, 그 정도는 얼마든지 각오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네.”

“그리고 말입니다. …편집국에 근무하는 놈들은 다 위원장이나 주요 요직을 차지하고…, 비편집국 직원들은 한낱 졸개에 불과한 현실이 한마디로 웃기는 거죠. 자기들은 월급뿐만 아니라 부수입으로 촌지도 엔간찮게 받으면서….”

“엉? 기자들이 과연…, 촌지를 정말 받을까?”

“당연하죠. 여태 그걸 몰랐어요?”

“물론 얘기는 들었지만, 그 사실을 확인한 적은 없잖아.”

“하이고, 우리 같은 주간지 기자들도 촌지를 받는데…, 그보다 훨씬 막강한 신문 기자들이 촌지를 안 받을 리가 있나요!?”

“글쎄, 추측 기사 말고…?”

“아하, 그건 저도 직접 경험했어요. 언젠가 한번 제가 영화를 담당할 때 시사회에 갔는데, 글쎄 제 봉투에 30만원 수표가 들어 있지 뭡니까?”

“그래? 봉 잡았군.”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어요. 한참 지나고 생각해 보니…. 전 그때, 영화 홍보 담당자에게 말하길, 주간지가 아닌 우리 신문사에서 나왔다고 했거든요. 그냥 저도 모르게 그렇게 했을 뿐인데….”

“허헛, 결국 신문사 영화 담당기자 몫을 중간에서 모르고 가로챈 거군.”

“그런 셈이지요. 물론 나중에 심적 갈등을 겪었지만, 좀 묘합디다. 그때, 비로소 신문 기자들이 촌지를 고정적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죠.”

“정말 그렇군.”

“그래서, 놈들은 꿩 먹고 알 먹으면서 할 것 다하죠. 아주 위선적으로….”

“진정한 노동이 뭔지도 모르는 자식들이 노동을 외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

“그래서 자네가 노조를 탈퇴한 것 아닌가?”

함봉호는 그쯤에서 쓴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는다. 배창호는 그런 함봉호가 재미있다는 얼굴로 쳐다본다. 기분에 따라 쉽게 취하는 함봉호의 술버릇을 익히 아는 그다.

“하지만 이러는 제 자신도 웃기는 놈 아닐까요? 후후훗….”

“어? 갑자기 그런 식으로 약해지면 안 되잖아. 벌써 술 취했나?”

“아니요. 세상에 함부로 타협하지 못하는 제가 우습다는 얘기입니다.”

“아닐세. 비겁한 타협보다 정당한 소외감이 더 나은 게야.”

“아니, 그렇게 어려운 말을….”

함봉호가 쓴 미소를 흘린다. 그러면서 슬며시 곁눈질한다.

“어? 역시 오늘 기분이 다운되었군. 벌써 취하기 시작하네. 이제 그만 가자구.”

배창호가 함봉호를 부축해 일어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 저지른 일이 그를 쉽게 무너뜨린 것이다. 술이 감정과 상극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망각한 탓이다.

다음날, 함봉호는 출근하자마자 묘한 눈길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배창호의 말이 딱 맞았다.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그와 첫 번째로 눈이 마주친 사람은 장영웅 부국장이다. 그 다음으로 쨍강 부딪친 눈길은 이한무의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광고, 판매, 영업, 관리부서 사람들의 눈길이 달려든다. 마치 무슨 구경거리라도 들어왔다는 표정들이다.

함봉호는 결국 애써 눈을 돌리고 만다. 그대로 그렇게 수많은 눈동자를 다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다. 자리로 와 앉는데, 이번에는 구본하가 원숭이 쳐다보듯 대한다.

“함 기자, 정말인가?”

“…….”

“노조 탈퇴한 게 맞아?”

“…….”

함봉호는 연거푸 묵비권을 행사한다.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른 채 계속 치근대는 구본하가 오늘따라 죽이고 싶을 만큼 밉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가장 아껴주는 선배 행세를 해온 그가 어이없는 실상(實像)의 모습으로 보인다. 지금까지의 것들은 모두 허상(虛像)이었다고 새삼스럽게 자신에게 각인시킨다.

“구 선배,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입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마치 범인을 앞에 두고 취조하듯이 물으니까 그러지요.”

“허, 아닐세. 내가 그만 급하게 물어본다는 것이…. 그런 오해는 하지 말고…, 정말이야? 아니야?”

“제가 노조 탈퇴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도 된답디까?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들 좀 이상하군요. 한마디로 상식 이하군요.”

“쉬잇! 목소리가 너무 커. 작은 소리로….”

“에이, 그만하시죠. 아무 것도 아닌 일 가지고….”

함봉호가 그쯤에서 갑자기 말을 끊자 구본하는 불현듯 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을 장영웅이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재빨리 창가로 고개를 돌린다. 잠시 동안 두 사람의 대화를 은근슬쩍 염탐했으면서도 모른 척하려는 속셈이다.

함봉호는 장영웅의 뒤통수에다 미소를 한소끔 던진다. 익히 다 읽고 있었다는 투의 빈정거림이다.

‘조만간 네 놈은 내게 뭔가 꼬투리를 잡아낼 것이다. 그리고 그 잘난 시말서를 또 받아두겠지. 마치 그래야 윗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으로 착각하겠지. 얼마든지 해 봐라.’

함봉호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이번에는 박승례가 다가와 한마디 거든다.

테이블 모서리에 손을 짚고 지나칠 만큼 친밀도를 과시한 탓에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이 와르르 쏟아진다. 자칫 유두까지 보일 만큼 앞가슴이 터져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선이다. 막상 확 까놓고 보면 별거 아니지만 살짝 감추는 감질이 더 매력적이다.

함봉호는 순간 비겁해지는 눈길을 매몰차게 꾸짖는다. 하지만 구본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사내들의 눈길이란 정말 알다가도 모를 것들이다. 빛보다 빠른 엄청난 속도이다.

“아니야.”

“선배, 노조 탈퇴했다는 말이 사실이에요?”

“그래, 맞아.”

“선배, 정말 잘했어요. 파이팅입니다. 있으나 마나한 어용노조인데…, 거 참 고소하다! 역시 선배는 멋쟁이야! 우리는 노조도 가입할 자격이 없지만!”

박승례는 화끈한 성격답게 거침이 없다. <계속>

박하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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