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절대로 안 돼!”

효주는 성미가 성깔을 있는 대로 부리자 피식피식 웃었다.

성미에게는 결벽증이 있었다. 건조대에 속옷 빨래를 함께 널어 말리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런 그녀에게 최찬재 오빠의 방문을 이야기했으니 통할 리 만무했다.

“정말로 안 되니?”

효주는 미친 척 다시 물었다.

“꿈도 꾸지 마.”

성미의 대답은 쌀쌀맞았다.

효주는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돌아오는 토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제주도에 다녀올 계획이다. 그 사흘간을 이용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그 남잘 끌어들일 모양인데...그랬다가는 우린 결별이야. 알았지?”

“계집애! 알았어.”

화가 난 성미를 가볍게 끌어안았던 효주는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녀가 팔짝팔짝 뛰던 말든 토요일 오후에 오빠는 원룸으로 올 것이다. 우리는 사흘 동안 동거할 것이다.

오빠는 이십 평짜리 원룸이 효주의 소유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설사 원룸은 성미의 것이며, 거기에 얹혀 지내는 것을 그가 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효주는 성미가 없는 동안 찬재 오빠와 신혼부부의 짜릿함을 마음껏 연습해 보고 싶었다. 그녀는 모텔을 전전하며 나누는 사랑놀이에 식상해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둘 만의 완전한 공간이 사흘씩이나 주어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성미야!”

효주는 다정한 목소리로 성미를 불렀다. 성미는 마지못해 못마땅한 얼굴로 여성 잡지를 덮었다.

“궁금한 게 있어.”

효주의 눈에 짓궂은 웃음이 찰랑찰랑 넘쳤다.

“너 정말 아직도 처녀니?”

성미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그게 말이야. 믿기지 않아.”

“너 언제까지 저질일 거야?”

“궁금한 걸 어떻게 해. 처녀 맞아?”

효주는 침대에서 내려와 의자의 등받이를 앞으로 돌려 두 팔로 안았다. 턱을 등받이 위에 올리며 물었다.

“넌 남자 가슴이 싫니?”

성미의 기가 찬 표정에 효주는 진저리치며 말했다.

“난 너무너무 좋아!”

“그러니까 넌 불결해.”

그녀가 불결하다며 외면하자 효주는 깔깔거렸다. 성미의 목덜미가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화가 나거나 결벽증이 발동하면 목덜미부터 달아올랐다.

“난 있지.”

효주는 노골적인 표현을 쓰기로 했다.

“오빠와 한 몸이 되어 오르가슴의 순간에 터지는 신음. 난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불덩어리로 변하니 어쩌니?”

“너…”

성미는 말을 잇지 못했다. 탁자의 빈 커피 잔을 챙겨 싱크대로 갔다. 수도꼭지를 크게 틀어놓고 커피 잔을 씻었다.

“사랑과 섹스, 그건 같은 말이라고.”

성미가 의자에 다시 앉자 중단했던 말을 이었다.

“그 짓이 그렇게 좋아?”

성미가 한심스러운 눈길을 보냈지만 효주는 박수를 쳤다.

“드디어 본심을 드러냈어. 진작 그럴 것이지.”

“하도 기막혀서 하는 말이야.”

“내숭 떨지 마. 그건 나쁜 짓이 아니야. 사랑하는 남녀의 극히 정상적인 행위야.”

효주는 성미의 결벽증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그녀의 행동이 늘 못마땅했다.

“넌 혼전 섹스에 대해 무조건 거부하는데…”

성미의 눈치를 살폈다. 말하고 싶지 않으면 샤워하는 게 그녀의 버릇이었다.

“결혼할 수 없어도 서로가 사랑한다면 상관없어. 남녀의 사랑이 결국 뭔데?”

성미가 벌레 씹은 얼굴을 하자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찬재 오빠와의 결혼 보장? 없어. 하지만 신경 안 써. 그가 내 곁에 있는 동안 미치도록 사랑할 거야.”

“섹스가 사랑이니?”

효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미의 커다란 눈을 바라보다가 일어섰다. 창문을 열자 찬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한강 건너편의 올림픽도로가 자동차의 불꽃으로 넘실거렸다.

“거짓말! 넌 섹스밖에 몰라.”

효주는 섹스라는 말 한마디에도 뜨거워지는 앞가슴을 헤쳐 겨울 찬바람에 내맡겼다가 천천히 창문을 닫았다.

“내가 색녀라 이거지? 그럼 넌?”

“순결한 여자.”

“웃긴다!”

효주는 그러나 웃지 않았다. 성미의 순결이란 말에 숨이 막혔다. 순결은 여자의 자유를 묶는 남자들의 이기주의라는 생각에 전신이 굳는 것 같았다.

“순결은 결혼의 첫째 조건이야.”

성미의 말에 효주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래? 그럼 결혼할 사람이 요구하면?”

효주는 빠르게 물으며 성미의 표정을 살폈다.

“결혼 전에는 안 돼.”

“사랑하면서도?”

“물론.”

효주는 성미의 생각과 정반대였다. 서로 사랑한다면 결혼 전이라도 상관없다고 믿었다. 찬재 오빠와의 사흘간 동거 유혹도 그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네가 제주도를 다녀오는 동안 우린 신혼부부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거야.”

효주는 꿈꾸는 표정을 지었다.

“난 찬재 오빠의 숨소리 하나까지 사랑해.”

효주의 말에 성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효주야! 너 불쌍해서 어쩌니?”

갑자기 성미가 탄식하듯 말한 후 생글거리자 효주는 순간 긴장했다. 얘가 제주도 안 가는 거 아냐?

“최찬재, 그 오빠랑 제주도에 함께 가. 이모 아들이거든.”

효주는 생글거리는 성미를 노려보았다.

“효주야! 어떡하니? 사흘간의 동거, 신혼 연습의 단꿈이 깨져서.”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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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병국은...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및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문예창작아카데미’와 스마트폰 전자책문학 ‘파란풍경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