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정병국 작가] 두려운 것은 낙태 수술이 아니었다. 그 시기를 놓쳐 미혼모가 되는 것이었다. 인희는 피임 실패를 대비해 산부인과 전문병원 두 곳에서 진료카드를 발급받았다. 몸에 이상이 없어도 정기적인 검진을 받았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무엇보다 오빠와의 잠자리가 불안하지 않았다. 자연 그와의 밤이 늘어났다.

편집기획사 근무는 짜증스러웠다. 툭하면 야근이라 밤의 시간이 불규칙했다. 인희는 정시에 딱딱 퇴근하는 직장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빠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라며 생활비와 용돈을 책임지겠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사표를 썼다. 팀장인 선배 언니의 끈질긴 추궁에 사표 이유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너 창녀니?”

인희는 선배언니의 뜻밖의 말에 당황했다.

“언니! 말이 너무 심하다.”

“생활비에 용돈이라고? 그게 화대지 뭐니?”

“화대가 뭐야?”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니?”

선배언니는 화가 난 표정에 안쓰러움까지 덮어씌웠다.

“화대란 섹스 파트너에 대한 몸값이야. 이것아!”

“언니!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해?”

인희는 선배언니의 말에 기분이 상했다. 노처녀의 히스테리로 돌렸지만, 화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퇴근 후 그의 아파트로 갔다. 그를 기다리며 저녁 준비를 했다. 빨래와 청소까지 끝냈을 때 그가 돌아왔다.

그는 직장 상사와 가볍게 술 한 잔 했다며 긴 입맞춤을 했다. 인희는 신혼의 착각 속으로 빠지며 허리를 뒤로 꺾었다. 그의 강한 흡입력에 온몸이 빨려 들어갔다.

그는 저녁밥보다 술을 마시자고 했다. 집에서는 얼큰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소주가 최고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늘밤은 올 수 없다고 했잖아?”

그가 술잔을 단숨에 비운 후 물었다.

부모님에게 인사시키던?

선배언니의 말이 떠올라 그의 얼굴에 눈길을 못 박았다.

“왜 그래? 사람 긴장되게.”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비볐다.

“나, 인사 안 시킬 거야?”

“인사? 누구에게?”

“누구긴? 오빠의 부모님과 가족에게.”

그가 쿡 웃음을 터트리자 인희는 심각한 질문에 왜 웃느냐고 화를 냈다.

“너 벌써 취했니? 부모와 동생들은 미국에 있어. 내일 당장 미국에 가자는 거야?”

인희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미국 생활이 싫다고 했다. 그래서 가족 곁을 떠나 혼자 귀국한 것이라고 말했었다.

“한국에 안 오신데?”

인희는 궁색하게 물었다.

“몰라. 다녀가시겠다는 얘기 없으셨어.”

“부모님께 내 얘기 했어?”

인희는 또 선배 언니의 비아냥거렸던 말을 떠올렸다.

그 자식 섹스놀이 하는 거 아냐?

“내 얘기 했냐고?”

인희는 대답을 재촉했다. 그가 대답 대신에 히죽히죽 웃자 초조해졌다. 섹스놀이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불길한 느낌이 밀려왔다.

“안 했어.”

그가 마침내 대답했다. 인희는 순간 몸이 굳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무슨 얘기? 그까짓 여자 친구 생겼다고 자랑하라는 거니?”

그는 재미있는 농담을 주고받듯이 말했다. 인희는 그의 여자 친구라는 말에 다시 충격을 받았다. 그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빠! 지금 그까짓 여자 친구라고 그랬어?”

“그래. 우린 좋은 친구잖아. 내 말 틀렸어?”

인희는 그의 되물음에 숨이 막혔다.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인희는 격해지는 감정을 애써 가누며 직선적으로 물었다.

“생각해보지 않았어.”

“그럼 왜 날 가졌어?”

“갖다니? 누가 누굴? 너도 날 원했잖아.”

그의 황당해 하는 표정에 인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러지 마. 우린 결혼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관계야.”

인희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인희야! 넌 좋은 여자야.”

인희는 혼란스러웠다. 그가 던지는 말에는 두 개의 답이 있었다. 승낙과 거절이었다.

“넌 내게 너무 집착해. 사랑이 단 한 번뿐이라고 단정하지 마. 나보다 더 기막힌 남자가 나타나면 그땐 어떻게 할래?”

인희는 할 말을 잃었다.

“난 결혼에는 관심 없어. 부모님께 너의 얘기를 안 한 것도 그 때문이야.”

인희는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은 짙은 안개였다. 그 안개 속에는 풀꽃들이 가득 차 있었지만, 무엇 하나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녀는 욕실로 들어갔다. 한참 동안 뜨거운 물을 온몸에 뒤집어썼다.

그는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 잠든 얼굴을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침실로 들어갔다. 침대에 깔려 있는 화려한 색상의 이불을 내려다보았다. 어제 해약한 적금으로 선물한 이불이었다.

인희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웠다. 그와 나눴던 숨결이 색색의 나비로 변해 방안 가득히 날아다녔다.

어리석은 짓 그만해.

선배언니의 말이 모든 나비를 한순간에 잡아먹었다.

넌 이제 겨우 스물 둘이야.

인희는 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면,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손길로 전신을 감싸온다면…….

인희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마음과는 달리 몸은 그를 부르고 있었다.

정병국 작가｜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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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작가는...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대표, 문예계간 ‘시와 수상문학’ 발행인, ‘시와수상문학 창작아카데미’를 운영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정병국 性풍자 콩트는 매주 화요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