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깡 술을 병나발 불 듯… 극심한 구토에 창자까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은 너무도 괴로웠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골프타임즈=박병대 시인] 가난한 시절이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찢어진다고 말했다. 끼니마저 궁하던 시절이라 미군 부대에서 버려지는 음식 찌꺼기를 꿀꿀이 죽이라고 칭하며 먹었고 막걸리를 거르고 난 술 찌끼미나 또는 두부공장에서 나오는 비지를 먹으며 굶주림을 달래던 1970년대 시절.

어려서부터 자수성가하셨다는 아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자수성가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자연스럽게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여 1971년 스스로 돈을 벌어 내 힘으로 대학을 가리라 결심하고 제일생명보험 태평로지점에 입사하여 보험 영업사원으로 사회에 첫 발을 내밀었다. 날을 거듭할수록 사회의 냉정함에 부풀었던 봄날의 희망은 제풀에 꺾여가며 슬럼프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대학으로 진학한 친구를 만나 다방에 들어 커피 한잔 마시며 여대생과 미팅을 한다며 눈망울을 빛내며 말하던 친구가 말할 수 없이 부럽기만 했었다. 타임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지적인 젊음의 낭만을 한껏 뿜어내는 친구 앞에서 주눅이 들어 한없이 작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이 초라하여 울컥울컥 화가 나기도 했다.

반면에 정장차림으로 흔들기만 하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쎄이코 손목시계를 차고 바지 뒷주머니에는 손수건을 두 장이나 소지했다. 한 장은 얼굴 닦고 다른 한 장은 구두 닦는 용도였다. 고객 앞에서의 깔끔한 인상과 함께 품위도 갖춰야 했기에 용모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스파이의 활약을 보여주는 첩보영화(007) 제임스본드가 들고 다니던 가방을 들고서 하루 종일 영업하러 다니던 영업사원이 나의 모습이었다.

사회생활에 지쳐 가끔가다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으례히 여대생과의 미팅이나 연애 이야기가 나오며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과 사르트르와 보봐르의 사랑을 견주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사랑타령도 들어야 했다.

혈기 왕성한 20대의 시절에 나 역시 호기심도 동하고 하여 요즘 소위 말하는 쭉쭉빵빵의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과 연애 한번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었다. 그래도 한 인물하던 나였기에 언젠가는 내가 소망하는 그런 여성과 연애 할 수 있으리라 굳게 믿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그런 낌새는 전혀 찾아오지 않았다.

한 인물 하기에 애인이 있으리라 미리 단정하고 돌아앉은 것 같다. 야속스런 여자들! 나, 애인 없어! 없다구! 소리 칠 수도 없고 이마에 써 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니 누군가 장난으로라도 나의 등 뒤에 애인구함이라고 써 붙여 줬으면 하고 허무맹랑한 생각까지 했었으니 이쯤 되면 중병에 걸린 것이 틀림없는 게 아닐런지…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상의 범주가 싫어 도심에서 하던 영업을 뒤로하고 외곽으로 멀찌감치 나가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여 입하(立夏)가 지난 초여름의 계절에 안양을 목적지로 하여 가방을 들고 안양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비포장도로의 먼지 속에서 덜컹대고 흔들리며 세 시간의 소요로 안양에 도착하여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고 필드로 나갔다.

정겨운 시골 읍내의 풍경 같은 정취에 정감을 느끼며 영업을 시작했다. 서울로 갈 시간을 따져보니 일 할 시간이 많아야 세 시간이었다. 안양 시내만 한 바퀴 돌면서 열댓 군데 들렀으나 성과가 없었고 서울 가는 버스에 올라 안양시내만 눈에 익힌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며칠 후 다시 안양으로 향했다. 버스보다 빠르고 먼지도 일으키지 않는 기차가 좋을 것 같아 서울역에서 기차에 올랐다. 초여름으로 들어섰다고는 하나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여 양복 위에 감청색 바바리코트의 벨트를 여미고 두 시간 후에 안양에 도착했다.

가방을 들고 역사를 나와 광장으로 들어서서 한발 한발 디딘 게 열 걸음 정도였을 때 30대쯤 보이는 건장한 체구의 사나이가 접근하더니 신분증을 보자고 했다.

‘어찌 그리고 위압적인 태도에 명령조의 말투인지…’

마음이 상해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눈길로 사나이의 위아래를 다리미질 하듯이 훑어 보고나서 눈을 맞췄다. 그러니 사나이의 말투가 누그러들며 “신분증 확인 좀 하겠습니다.”하며 손을 내밀기에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현지인과 눈에 띄게 나의 차림새가 분별이 있었나?’

‘아니면 전국에 지명수배중인 범법자 중 그 누군가와 닮았나?’

‘그것도 아니면 바바리코트에다 007가방을 들고 있어서 간첩으로 의심하였나?’

주민등록증을 받아 넣고 광장을 나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나니 불쾌하기가 짝이 없었다.

‘사복을 한 형사인가? 안기부 요원인가?’

지난번에 들렀던 제과점에서 빵과 우유로 점심을 하려고 들어섰다. 고로깨와 도넛, 우유를 주문하고 자리잡고 앉는 순간에 화들짝 놀라서 휘둥그레지는 눈과 함께 몸속의 피가 어찌 그리 빨리 도는지 온몸이 후끈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이 순식간이었다. 건너편 자리에 미모의 여성이 빵을 먹으며 출입문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으니…

그녀는 빵을 먹으며 출입문에 눈을 맞추고 나는 고로깨를 먹으며 그녀에게 눈을 맞췄다. 어대생과의 미팅이나 연애이야기를 자랑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 내 앞에서 빵을 먹고 있는 그녀를 흐뭇하게 점찍었다.

도넛을 먹으며 생각했다. 그녀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지

‘혹 애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저렇게 예쁜데 애인이 있을꺼야!’

‘그렇다면 헛다리 짚은 걸까?

‘아냐, 그럴리 없어! 저리 예쁘니 모두 애인이 있다고 지레 짐작하고 침만 흘렸을 거야!’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지러운 머릿속의 복마전으로 어수선했던 생각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면서 우유를 마시고 작업에 돌입했다.

“실례합니다.”

“왜 그러시죠?”

“생명보험 소개 좀 해 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청유형의 멘트로 “해 드릴까요?”하고 말하면 90% 이상이 거절을 하는 지라 일방통행식의 강요형 멘트를 날리며 자리에 털썩 앉기가 무섭게 가방을 테이블 위에 얹어 놓고 오픈을 했다. 가방 속의 내용물은 몸체이면서도 뚜껑역할을 하는지라 맞은편에서는 볼 수가 없어 궁금증과 더불어 흥미와 함께 호기심을 유발하는데는 가방(007)이 최고였다.

보험 상품 소개의 전단지를 꺼내 설명을 하고 얼마 후에 청약서를 쓰고 지장을 찍고 청약금을 요구하니 난처해하며 가진 돈이 없으니 다음 주 이 시간에 여기서 주면 어떻겠느냐고 하기에 약속을 하고 나왔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그녀의 모습을 그려가며 덜컥대는 기차 바퀴의 진동음과 함께 산뜻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쳤다.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가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평면 위에는 그녀의 얼굴만 보이고 슈크림 빵을 먹으며 오물거리던 입도 보이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핑클파마의 빛나는 검은 머릿결도 눈에 아른대며 보이니 이럴 때 딱 들어맞는 말이 환장해 죽겠네 아니겠는가?

모진 고통의 일주일 후 그 시간에 제과점에 갔다. 그녀가 없다! 십분, 이십분, 한 시간을 기다려도 감감소식이다. 가요의 커피 한잔 노래가 전국 사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펄 시스터스의 목소리로 머릿속을 맴돌아 나가고 한 시간 삼십분이 지나도 오질 않더니 두 시간이 되어갈 때 그녀가 들어섰다.

구겨진 자존심의 참담함은 미녀 할아버지라 해도 화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약속을 등한시 하시면 어떻게 해요?”

“아가씨 기다리느라고 일할 시간을 다 뺏겨 일을 못했으니 변상하세요.”

“정말 미안해요.”

“그렇다고 변상을 요구하시는 건 좀 심하지 않나요?”

“심하다뇨?!”

“나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에요!”

이렇게 옥신각신하면서 드디어 예쁜 미인이 나의 애인이 되었으니 황홀한 마음은 하늘을 날아갈 것 같았다.

그 후로 서울과 안양에서 일주일에 두 번 만나며 난생 처음으로 예쁜 애인과 데이트를 하는 꿈결 같은 황홀한 날들을 보내며 그녀가 서울로 올라오고 내가 안양으로 내려가는… 즐거운 데이트를 가졌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희였고 직업은 안양컨트리클럽 캐디였다. 가끔씩은 술집에도 들러 술 한 잔에 얼큰해서 돌아오기도 했다. 체질적으로 받지 않은 술로 하여 두꺼비 딱지가 붙은 진로 소주 한잔이 나의 주량이었고 두 잔이면 갈지자걸음에 석 잔이면 땅바닥 신세를 져야 했다.

성하의 계절. 맹렬한 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는 계곡의 물가에서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잠이라도 들게 되면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었고 안양의 어느 곳에 있던지 자리하고 앉아있다 보면 어떻게 알았는지 삼십분 안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나 내심 놀라워하기도 했다.

입추가 지나면서 가을로 접어들어 나뭇잎이 단풍들 채비를 하는 9월에 전과 다름없이 안양의 제과점에 자리 잡고 앉았다. 헌데 삼십분이 지나도 그녀는 오지 않고 시간은 한 시간을 넘어가고 있는데 그녀의 친구가 들어섰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니 나에게 묻는다.

“아직 모르고 있어요?”

“네? 무얼 몰라요?”

“친구가 지난봄에 약혼을 했는데 마지막 토요일에 결혼해요.”

“네에??”

이런 일을 청천벽력이라고 하던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멍청하니 넋만 빠져나가고 가슴은 치받혀 오르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 서울로 오는 내내 울화가 치밀어 오르고 하여 서울에 도착하니 저녁 여섯시가 돼가고 있었다. 물드는 저녁노을을 보며 구멍가게에서 진로소주 한 병 사들고 깡술로 병나발을 불었다. 길바닥이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반병의 술이 빈속에 들어가니 사지의 맥은 몽땅 빠져나가 비척거리는 갈지 걸음도 얼마 가지 못해서 벌러덩 하니 땅바닥 신세를 졌다.

하늘이 비잉빙 돌아가며 어두워지는데 별은 하나 둘 떠오르고 극심한 구토는 창자까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은 실로 괴롭기 짝이 없었다. 그녀에 대한 분노도 어디로 가고 끔찍한 고통만 없어지기를 소망하며 꿈결 같았던 시간들이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42년 전 유월에서 구월까지 황홀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아! 옛날이여…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하기란 힘들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깡 술을 병나발 불 듯… 극심한 구토에 창자까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고통은 너무도 괴로웠다. 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박병대 시인｜master@thegolf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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