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영희 시인] 무영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새벽에 잠 깨어 어스름한 주변을 돌아보다가 일기예보에 곳곳의 눈 소식이 들어있기에 첫눈이 내릴까 하여, 여명도 깨지 않은 창밖을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는데 눈은 오지 않더군요. 낮에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보곤 했는데 구름 한 점 없이 맑기만 한 오늘입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들처럼 기다리면 올 텐데 조바심을 달고 하루 종일 눈 돌리며 들숨 날숨조차 어지러운 시간을 보내고 말았어요. 때 되면 올 것인데 그토록 기다리고 있던 모습을 생각하니 민망할 따름입니다.

매듭달의 첫날이 주었던 설렘은 벌써 잊히었고 손돌바람 불어오던 대설(大雪)의 품도 시간에 주름에 접힌 채 저만치 달아나고 있음을 봅니다. 세 살 버릇 도지어 잠시 들떴던 이 마음도 시간의 고요 속으로 차곡차곡 개켜지고 있네요.

무영,
연속의 힘을 싣고 질주하며 나아가고 있는 시간을 보며 그대가 즐겨 부르는 '질풍 가도'가 생각나는 나날들입니다. 나는 여전히 첫눈을 기다리며 맑은 날에도 하늘에 시선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흩날리는 눈이라도 내리면 어디선가 첫눈이라는 소식을 들려줄 그니의 목소리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모쪼록 찬바람에 감기 달지 말고, 말간 얼굴도 잃지 말고 하루하루 무궁무진 힘찬 걸음 걷길 바라는 마음 하늘에 올려둡니다.

첫눈

첫눈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어느 골에 매화가 벌써 피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이른 잎을 돋은 개나리를 스리슬쩍 넘겨 보다
몇 부대의 진달래를 장항아리에 켜켜이 쌓으며
벚나무가 꽃비로 탈탈 털릴 적에

아른거리는 첫눈을 기다립니다

가슴을 열어젖히고 짙푸른 소망을 담는
구상나무의 행진을 보며

아슴푸레한 첫눈을 기다립니다

어느 때 어디엔들 눈이 내리면
말갛게 들뜬 목소리가
시공을 빠르게 접고 달려듭니다

-여기 첫눈이 내려요
거기도 내리나요?-

매양 첫눈이라는 유별난 소식을
특급으로 받는 한 여인네는
삼복(三伏)을 누를 심산도 아니면서
여전히 생게망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게망게 : 하는 행동이나 말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시인 박영희는
한국문인협회 회원, 디지털 삽화가, 칼라맨, 캘리그라퍼. 출판편집 디자인 팀 ‘지소사’의 팀장, 시와수상문학 운영위원장으로 문학사랑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박영희 시인은 필명 ‘지소하’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시집으로 ‘우연처럼 뜬금없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