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강향순 수필가] 창밖에는 가을을 부르는 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문밖으로 서성이는 마음을 지인과 함께 폐막이 3일밖에 남지 않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을 관람하기로 약속을 하고 외출준비를 서둘렀다. 바람도 소설해져 얕은 간절기 바바리코트에 천연염색 스카프를 두르고 이른 가을 분위기로 집을 나서니, 내가 화가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상쾌하고 좋아졌다.

지인과 지하철 3호선 남부터미널에서 만나 예술의 전당을 가려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생각이 안 났다. 친구나 아이들과 함께 다녔지만 혼자 올 생각은 안하고 건성으로 다녔구나 하는 반성과 함께 연세도 있으신 보살님께 민망한 생각이 들어 얼른 앞서가는 청년에게 방향을 물어보고 길을 안내해 가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내가 앞장서서 안내하고 보호한지도 언제인가 하는 생각에 우리 아이들이 엄마를 너무 노인 취급을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인지 생각도 잘 안나지만, 아이들이 보호자가 되고 내가 아이가 된 것처럼 보호만 받고 있었다.

일상이란 이치에 맞고 올바르고 마땅해서 당연해지는 게 아니라 익숙해서 당연해지고 그러다가 진부해지고 무디어지기까지 하는데, 어쩌면 내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 덕택에 별 어려움 없이 하고 싶은 취미생활 하면서 이렇게 지내고 있지만 아직 미혼들이라 결혼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혼자 해야 할 시간이 더 많아질텐데 혼자서도 잘 해 나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는 비에 젖은 여름꽃이 함초롬히 미소를 보내는 모습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한가람 미술관 1층 로비에 도착하니 주말이기도 하였지만 5월1일부터 시작해 8월29일 폐막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관람객들이 코로나19 규칙을 준수하며 긴 줄을 서서 티켓팅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거장 파블로 피카소 그림 전시회장임을 실감케 했다.

함께 한 보살님과 우리는 갑자기 번개팅이라 티켓팅을 하려고 긴 줄을 서야만 했다 문득 일본에 있는 둘째 딸이 생각나 울컥해졌다. 코로나 팬더믹으로 못 만난 지가 2년이 넘기도 하고 미대 시각디자인을 전공해서 우리집 문화, 예술 담당을 맡고 있었던 터라 그림 전시회, 뮤지컬, 연극공연 등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 콘서트 티켓까지 다 준비해서 안내와 해설까지 해주는 효녀라 따라만 다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보니 둘째의 수고와 감사함이 함께 밀려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웠다.

둘째는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회사 수석 디자인으로 근무하다 퇴직을 하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갔다, 눌러앉아 직장을 다니고 있어도 일 년에 두 번은 다녀갔는데 코로나로 2년이 넘게 오지 못해서 화상통화도 하고 자주 연락은 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방역체제가 우리나라와 달리 철저하지 않은 것 같아 늘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백신을 화이자로 2차까지 맞았다고 해서 조금은 마음이 놓이지만 하루가 멀다고 “마스크가 백신이다 마스크 잘 쓰라고” 노래를 하고 있다.

우리 차례가 돌아와 티켓팅을 하고 또 순번대기 표를 받고 카톡으로 입장 순서를 전달받아 전시장으로 입장을 할 수가 있어, 미술관 벽에 걸린 플래카드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까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려는데 보살님이 싸 오신 텀블러를 꺼내시며 차를 준비해 오셨다고 하셔서 나도 식탁에 있던 빵을 가방에 넣었던 생각이나 꺼냈더니 보살님께서는 약속도 안 했는데 잘 되었다고 좋아하셨고 나도 동조는 하였지만 남의 영업장소에서 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조금 망설이다 탁자에 올려놓지도 못하고 무릎에 놓고 숨겨서 먹고 마주 보며 웃음을 터뜨려지만 그건 아니었다고 본다. 다음에는 빵도 커피도 꼭 시켜서 탁자에 올려놓고 하하 호호 편안하게 먹는 걸로 하자고 약속을 하고 동시에 관세음보살님 하고 반성을 했다. 무작정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수고로움이 덜 해 디지털 시대에 사는 편리함에도 감사했다.

잠시 후 카톡 ‘우잉’ 채널에서 입장 순서가 전달해 오고 전시장으로 입장을 해 들어서니 프랑스 파리 국립 피카소 미술관 소장 걸작품 110점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시는 연대기적, 테마로 구성이 되어 있고, 초기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이동하는 혁명의 시대, 초현실 주의를 추구하던 중 고전주의로 돌아갔던 시기, 볼라르 연작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품들 피카소와 연인들, 최초로 한국 땅을 밟은,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그리고 마지막 열정작품들 순서로 관람할 수 있고, 피카소의 여인들에 관한 스토리도 흥미로워 지만,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중요했던 작품인 한국에서의 학살은 전쟁의 참상과 예술을 통해 게르니카와 시체 안치소와 더불어 피카소 반전 예술 3대 걸작 중 하나이며 작품발표70년 만에 한국에 처음 소개되어 더욱 특별했다. 전쟁의 참혹함이 단순화된 선과 무채색으로 그려진 인물들이 너무나 전쟁의 참혹함이 생생히 전해오고 느껴져 한참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피카소의 대표적인 뮤즈 마리 테레즈의 초상과 꿈이란 작품을 좋아한다 다른 그림과는 달리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곡선과 은은한 중간색에 끓여서 전시장에서 판매하는 복사판 액자도 오래동안 소장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신문이나 잡지에 실려 있는 그림을 오려서 모우 기도하고 좋은 그림이 있으면 갖고 싶어 했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깊게 자리 잡고 있어서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째도 미대를 가게 했고 나도 지금은 어설프게나마 이것저것 그리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피카소에 대한 지식들이 다시금 정리되는 느낌으로 너무 감명 깊고 재미있게 관람했다. 함께 하셨던 보살님은 피카소 전시회 관람은 처음이신데 너무 좋았다고 손녀딸 주신다고 피카소에 관한 동화책도 구입하고 좋은 작품 관람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맛난 밥도 사 주셔서 잘 먹고, 코로나로 갇혀서 갑갑했던 일상이 세계적인 거장 피카소 예술세계로 빠져나와 몇 시간이나마 화려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필가 강향순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ㆍ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은평문인협회 백일장 대회 우수상 수상했다. 나를 닮은 그릇(공저)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