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이정인 시인] 이제 얼마 후면 결혼을 하게 되어 드디어 어른으로 독립을 하게 되는 아들의 생일입니다. 다음 해부터는 아내와 지낼 것을 생각하니 조금 더 화려한 생일날을 보내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바쁜 일이 많은 탓에 식탁의 화려함보다는 마음으로 맛있게 한끼를 먹자는 쪽으로 정했습니다.

아들은 술을 마시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레드와인을 준비했습니다. 잘 어울릴 듯한 안주로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테이크도 구웠습니다. 아이들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꺼냅니다. 할머니는 곧 나의 시어머니가 되는데 돌아가신지는 오래지만, 생전에 우리에게 준 행복한 추억은 한 점도 없습니다. 시어머니에게 나는 며느리라는 이름표를 가진 그저 여느 집의 딸일 뿐이었습니다.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도 없고 그저 해남이라는 낯선 도시에서 20년이 넘는 시간을 불편한 명절을 보냈던 기억만이 있습니다. 예순이 넘을 때까지 지독한 시어머니를 모셨던 나의 시어머니는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배웠던 많은 불편했던 일을 그대로 당신의 며느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어쩌다 명절날 친정이라도 가겠다는 표현을 하면 마땅하지 않은 여러 이유를 가지고 친정을 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고, 명절이 끝날 때 까지 집안 일을 만들어 놓았던 그런 분이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어느 집 귀한 딸의 시어머니가 됩니다. 온 생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들이 선택한 인생의 반쪽이고 반려자가 되는 귀한 사람을기다리며 내 마음 밭을 정돈해 봅니다.

식사를 마친 아들이 봉투를 건네줍니다. 자신의 생일이 지닌 가장 큰 의미는 엄마에게 감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커다란 메모와 함께 큰절까지 합니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두 번 째 엄마가 되어주어야 겠습니다.

아이들을 사랑으로 키웠던 지난 시간을 이제는 아들이 사랑하는 며느리의 엄마로서 행복한 내가 되기로 정했으니 말입니다.

시인 이정인은
시와수상문학 작가회 사무국장, 옳고바른마음 총연합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2019년 언론인협회 자랑스러운 교육인상을 수상했다. 칼럼니스트와 시인으로서 문학사랑에도 남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