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강향순 수필가] 시골을 좋아하는 나는 가끔 푸른 들판을 걷는 꿈을 꾼다. 몸은 복잡한 도시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평화롭고 아늑한 시골의 산과 들을 그리워한다. 그런 나의 소망을 채우듯 시부모님께서 살던 본가를 두어 달에 한 번씩 내려가 지내다 오곤 한다.

한 달 전, 볼 때만 해도 나뭇가지마다 앙상했는데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다. 마당 어귀 햇살 밝은 곳에 사는 목련은 흥겨운 봄 잔치를 벌이는지 하얀 꽃을 소담스럽게 피워놓고 나 보란 듯 웃고 있고, 앞산 참꽃도 붉은빛을 토해내며 탱탱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이렇듯 집 밖을 나서면 만나는 모든 풍경이 내 마음을 즐겁게 한다.

나이 들수록 사람 사귀는 게 쉽지 않다. 특히나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다들 말도 잘하고 아는 것이 어찌나 많은지 자랑거리 듣다 보면 나는 한마디도 못 하고 돌아올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괜스레 우울해진다. 대화는 소통하는 데서 친분이 쌓인다. 남보다 한발 앞서가야 한다는 조급증이 불러온 이기적 충족인지도 모른다.

시골에 가면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들이 많다. 나무, 풀, 야생화, 새들에 이르기까지 내 방식대로, 내 삶의 빛깔대로 불평 없이 들어주고 이해한다. 나 또한 그들이 말하지 않아도 저마다의 살아가는 방식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를 배우고 계절에 순종하는 이치를 깨닫는다. 집안의 공기청정기가 있다고 한들 시골의 맑은 공기만 할까. 직접 느껴 보지 않고 말로만 들으면 신선한 공기의 참맛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둥지를 틀고 살아봐야 상쾌, 유쾌 통쾌한 그 단맛을 몸이 먼저 반응한다는 걸 느낀다.

6년 전 일이다. 지인의 집에 들렀다가 자연 속에 묻힌 한옥의 풍광이 어찌나 좋은지 온몸으로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 향수를 잊지 못해 그어 이 식구들을 두고 나 혼자 자연을 벗 삼을 요량으로 5년을 시골에 내려가 살기로 했다. 그때 벌인 나의 무모함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말 그대로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텔레비전은 물론 편리한 생활가전에 이르기까지 물질문명의 공세를 되도록 멀리하며 지냈다. 시골 살이 할 줄도 모르면서 그저 공기 좋은 것만 생각했으니, 시골에서 사신 분들 보기에 내가 얼마나 한심해 보였을까.

꽃을 좋아해 집 주위 텃밭에다 온통 꽃을 심었더니 이웃 할머니들께서는 먹지도 못할 꽃을 심었다는 핀잔만 듣고, 씨앗을 한군데 뿌려놓아 혼쭐이 나기도 했다.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고 익혀가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 할머니들과도 친구가 되어 봄이면 나물 캐러 다니고, 가을이면 도토리 줍고, 겨울이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재미에 빠져 지냈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급하던 성정도 느긋해지고, 절대 용서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용서되고, 마음 안에 옹이진 것도 술술 풀어지면서 느림의 여유까지 생기니 머릿속이 맑아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그렇게 5년을 보내다 사정이 생겨 전원생활을 접고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다. 손에 들어오는 것도 없으면서 매일 바쁘고 쫓기듯 정신없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몸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가족과 함께 지내는 시간도 행복했지만 아무래도 나는 체질적으로 시골뜨기로 사는 게 내 몸에 잘 맞는 것 같다.

가만히 있다가도 불현듯 시골이 생각나면 나는 지금도 도망치듯 시골집으로 내려오곤 한다. 지난봄에 마거릿 두어 그릇을 화분에 심어 두었는데 서울에서 한 참 만에 내려와 보니 배배 말라 죽어 있어 어찌나 속상했는지. 하지만 꽃씨가 떨어져 있었는지 늦은 가을 싹이 움터 화분에 옮겨 심어 실내에 들여놓았더니 예쁘게 잘 자라 내내 앙증스러운 하얀 꽃을 피워 나를 기쁘게 한다.

올봄에는 그동안 할머니들께 배운 농사 실력을 발휘해 볼 생각이다. 제철 채소를 심어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 무농약 제철 채소를 맛보여 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다가오는 5일장에 나가 채소 모종도 사고 흥청망청 시끄러운 저잣거리의 신명 난 즐거움에 눈 호강, 입 호강도 해보리라.

수필가 강향순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ㆍ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은평문인협회 백일장 대회 우수상 수상했다. 나를 닮은 그릇(공저)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