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강향순 수필가] 지리산 기슭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정의 수위를 조절할 수 없는지 전화기 너머로 한껏 톤 높은 소리가 들려온다.

“왜 또?”

“내사마 속 터져 못살겠다. 저렇게 융통성도 없고 고집불통인 남자가 세상 어딘는지 몰라!”

“이번엔 또 왜 그러는데, 이유가 뭐야. 뭐가 안 되서 그래?”

친구가 속 터진 이유는 이랬다. 노후된 전선을 교체하는데 공사하는 분이 장독대 앞에 전봇대를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친구가 그건 안 된다고 하고는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나무가지 위에 걸쳐 해달고 했더니, 남편은 남의 밤나무까지 훼손해 가며 전선을 늘어놓는 것은 옳지 않다며 미관상 좋지 않더라도 내 집 장독대 앞에 전봇대를 세워 이용하는 게 당연하다며 핀잔을 주더라는 것이다. 친구 집 구도를 나도 잘 아는 터라 친구의 주장을 꺾는 남편의 말에 화가 날만 했다. 나는 편들듯 네 말이 맞는다며 맞장구를 쳤다.

친구는 천 평이 넘는 땅에 한옥을 지어 놓고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자식 돌보듯 혼자 힘으로 정성을 다해 가꾸고 다듬고 관리를 잘해 놓아 오는 손님들마다 기분 좋게 편히 쉬었다 가곤 했다. 안주인의 손길이 야물어 집도, 경관도, 환경도 깨끗하게 빛이 나는 그 집 장독대 앞에 전봇대를 세운다는 게 싫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친구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나는 타이르듯 조근조근 이야기를 해주었다.

“화만 내지 말고 잘 생각해봐. 다퉈봐야 너만 마음 상할 뿐, 머리 맞대고 좋은 방법을 찾아봐. 생각하다 보면 뭔가 좋은 방법이 떠오를거야”

친구뿐 아니라 그 남편 되는 이의 성품도 익히 아는 터라 나는 전화를 끊고 두 사람을 생각하며 웃었다.

친구는 지인이 운영하는 고시촌에서 고시생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10년 넘게 뒷바라지를 했다. 기다림이 지친 끝에 남편이 포기하듯 공부를 접자 집안의 가장 역할을 자처하고는 펜션 운영하는데 두 팔을 걷어붙여 도와주었다. 하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치면 산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라던가. 잡초형이 된 아내를 온실형인 남편의 입장에서 이해되지 않은 일이 있듯 아내 역시 사람 좋기 만한 남편을 이해되지 않은 건 마찬가지였다. 공부만 했을 뿐, 직장생활도,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남편이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소통의 불협화음으로 두 사람은 걸핏하면 다투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 일이 있을 때 마다 친구는 속풀이를 풀듯 내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오늘 일만 해도 친구 말을 들어보니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약간의 융통성만 발휘하면 손님 오기 전, 전선 교체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남에게 폐가 된다는 이유로 순리대로 하자면 시일도 걸리고 비용도 들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에도 불합리한 결정처럼 느껴졌다. 융통성을 발휘하려는 아내를 나쁜 사람 취급하듯 공사하는 분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아내의 입장에서 그런 남편이 얼마나 답답할까. 친구 마음이 편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니는 그런 영감하고 왜 사는데?”

“어쩔 수 없이 사는 거지”

“그럼 지금이라도 헤어지면 속 편히 살수 있것네, 혼자 살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 좋지 않겠니.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네 말도 맞고 네 남편 말도 맞는 것 같아. 너희 집 전선을 남의 밤나무 위로 연결시켜 사용한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닌 거지. 전봇대가 없어 바람이라도 불면 선이 늘어지기도 하니 그동안 밤나무가 얼마나 시달렸을지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적 있니. 이번 기회에 안전하게 설치하는 게 낫지 않겠니. 네 남편이 융통성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는 분이잖니? 적당히 넘어가기 좋아하고, 아무데 나서서 엉뚱한 짓 하는 것 보다는 올곧게 사는 게 훨씬 좋지 않겠니”

“얼렁뚱땅하는 사람이었으면 애시당초 내가 살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되는 대로가 좋다는 걸 알고 있는 거네. 사랑싸움 그만 하고 대화로 풀어보렴”

친구와 전화를 끊고 나니 나도 가끔 아들에게 하던 소리가 생각났다.

‘세상 살아봐라 되는 대로 만 살아지게 되는지, 답답하고 융통성 없으면 무시나 당하고 손해나 보는 게지’ 사실 아들한테 그런 말을 해놓고도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들의 말처럼 되는 대로 산다는 게 좋다는 걸 내 어찌 모를까. 순리대로 산다면 세상사 미워하고 원망하고 싸울 일도 없을 터이다. 아들이 걱정한 말이지만 조금 늦더라도 느긋한 마음으로 주어진 만큼에 만족하며 살아간다면 복잡하고 삭막한 우리네 삶이 향기롭고 아름다울 것 같다. 보이는 풍경이 조금쯤 눈에 거슬린다 해도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순리대로 살아 갈 수 있기를, 새롭게 맞는 새해 앞에 다짐하듯 나를 향해 기도를 한다.

수필가 강향순은
한국수필로 등단, 한국수필가협회ㆍ한국수필작가회 회원이며 은평문인협회 백일장 대회 우수상 수상했다. 나를 닮은 그릇(공저)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