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해성 스님, 시인] 겨울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어느덧 나뭇가지 끝에 달린 잎새들도 떨어져 뿌리에 내려앉았다. 그 낙엽들은 땅에 기대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잎과 열매를 버리고 홀로 추위를 버티는 덤덤한 나무도 멋지게 보인다. 바로 탐.진.치(욕심.생냄.어리석음) 삼독심을 내려놓으라는 법문을 펼치는 듯하다. 그러면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은 나의 삶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한 해가 마무리되는 요즈음 “하얀 고무신”시가 생각난다. 하얀고무신/ 처음처럼 하얀 마음 찾아서 머나먼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땀과 눈물로 찌든 때 마음으로 씻어내려 걷고 또 걷는다/ 혼자 가는 외로움 빗물에 스며드는 험난한 길/ 달빛으로 꿰메어 댓돌 위에 놓으니/ 바람에 낙엽 한 잎 들어 앉는다/ 깊은 밤 지새우며 가슴속을 떠나지 못하는/ 탐 진 치 삼독심(三毒心)을/ 살포시 내려놓는다.

항상 열심히 일하다가도 마음의 부담으로 힘들 때가 종종 있다. 쉼 없이 흐르는 세월에 처음 마음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고민할 때도 있었다. 망설이다가 잠시 시간을 내어서 가까운 산사에 들렀다. 사찰에 들어가는 순간 가지런히 놓여진 스님들의 하얀 고무신이 나를 멈추게 했다.

출가한 우리들은 하얀 고무신을 의무적으로 신었다. 지금도 아무리 좋은 신발이 있어도 여름이면 고무신을 즐겨 신는다. 하얀 고무신에는 여러 가지 진리가 숨어있다. 흰색은 청결함을 뜻한다. 흰 고무신을 신는 우리는 신발에 때가 끼지 않도록 계속 닦아야 했다. 스님들이 요즘도 고무신을 신는 이유는 끊임없이 정진하라는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잊었던 하심(下心)하며 더욱 정진할 것을 일깨워주었다. 그런 의미를 되살리며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하얀 고무신 시를 쓰게 되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지은 시라서 더욱 애착이 많다.

오늘도 그때를 기억하며 산사에 다녀왔다. 하얀 고무신을 벗어놓은 댓돌 위에는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조고각하는 신을 가지런히 놓아라. 자기 발밑을 잘 살펴라. 깨달음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라는 뜻이다. 결국 남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가깝고 친할수록 보다 신경을 쓰며 조심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나도 이제부터 하얀 고무신을 생각하며 초발심을 되살려서 하심(下心)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시인 해성스님은
대한불교 조계종 광림사 주지, 연화원 대표이사이자 수어통역사로 ‘자비의 수화교실’ ‘수화사랑 친구사랑’ 등을 출간했으며 시집 ‘하얀 고무신’있다. 2020년 ‘올해의 스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