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타임즈=박소향 시인] 오랜만에 단비가 내린다. 연초록 자연이 고개도 들기 전 절망으로 타버린 산야에도....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아픔으로 변해버린 세상에도....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린 요상한 세상에도.... 그런 세상에도 여전히 봄은 오고 있다.

봄을 몰고 오는 비는 얼마나 달콤한가. 부드럽고 달콤한 이 빗소리가 불면의 밤처럼 뒤숭숭한 꿈자리를 안겨주는 건 리셋도 안되는 망가진 컴퓨터처럼 감각을 잃어버린 망각의 바이러스 때문만은 아니다.

어느 저녁 퇴근 후 친구와 한 잔 하던 중이었다.

“너는 만약에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때로 가고 싶니?”

생각할 틈도 없이 물어보니 갑자기 대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너는?” 하고 되물었다.

“나? 나는 10대로 가고 싶어, 그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버지, 동생들, 모두가 여름이면 마당에서 모깃불 피워놓고 켁켁 대며 저녁밥을 먹었는데, 엄마 혼자 분주하게 부엌을 드나들며 시중을 다 들어서 가끔씩 내가 도와주곤 했지.”

지금 생각하면 힘들어도 그 때 참 좋았어, 마당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가득했는데.“

”너는? 너는 지지배야, 빨리 발해 봐.“

”나는 아무 때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 지금이 제일 좋은 거 같아.“

”그래, 이제는 나이가 드니 남편도 온순해지고, 자식들도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사는 어른이 되었으니, 내 시간도 많이 가질 수 있어 좋고....“

”그리고 너는 또 네가 하고 싶은 글 마음껏 쓰면서 열심히 새로운 일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내가 봐도 좋아 보인다.“

우리의 대화는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위로를 받으며 늙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이든 소중하지 않은 삶은 없다.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고, 힘껏 살아 냈으니 말이다.

봄도 그렇게 다시 사는 기분으로 우리 곁에 와 있다. 곧 꽃 잔치가 벌어질거야. 하면서....

그래, 너라도 화려하고 어여쁘게 와주렴.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가리라... 주역에서

시인 박소향은
한국문인협회과 과천문인협회 회원으로, 시와수상문학 사무국장과 도서출판 지식과사람들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시사랑운동’에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