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삽화=임중우)

[골프타임즈=노경민 작가] 그때는 그랬다.
불과 100년 전도 아니다. 규중 여인네는 가마 속에 비단 한복으로 몸을 숨겼다. 그 옆에 무명 한복 입은 참모가 따르고 패랭이 쓴 가마꾼이 바지 저고리차림으로 가마를 들었다. 갓에 소맷자락 넓고 긴 도포자락을 휘적이며 다니는 사람은 글깨나 읽은 선비였다.

양반과 상놈, 주인과 하인의 차이가 확연하고 차림새만 보아도 그 신분을 알 수 있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경계선이 뚜렷했다. 신분 위계질서를 법으로 정하였으니 양반은 가슴에 끈 하나 매어주었다. 그중에 붉은색 술띠를 하면 더욱 귀한 신분이었다.

그랬던 것이 광복과 함께 찾아온 개화와 신분제가 붕괴하면서 자유로워졌다. 여인네는 양장을 입고 남정네는 양복을 맞추어 입었다. 상투 머리도 자르고 이발하였으며 여인들은 커트에 퍼마까지 다양해졌다.

격변기 때의 이야기다. 어머니는 전주 이씨 가문의 종가 맏딸이다. 서울살이하면서 한복보다는 간편한 월남치마를 입고 머리도 짧은 파마를 하였다. 이제 막 초등학교 입학한 딸에게 짧은 주름치마를 만들어 입히고 머리는 단발머리로 찰랑거리며 다녔다.

한 날은 전주에 사시는 외할아버지가 서울 나들이를 했다. 갓을 쓰고 소매 자락 넓은 도포 자락에 지팡이를 짚고 오신 할아버지는 들어서시며 호령하셨다. 딸의 모습과 손녀딸의 불경스러운 모습을 보셨다. 기에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맨다리를 내놓고 회초리를 맞았다.

봄날의 풍경은 다양해졌다. 진달래 개나리 피어나듯이 옷차림도 화려해졌다. 시도 때도 없이 입는 옷의 모습도 다양하다. 윗옷은 겨울 누비에 하의는 다 드러낸 반바지다. 위, 아래옷은 잘 여며 입었는데 맨발에 슬리퍼다.

신분을 드러내던 옷차림이 이제는 편안한 자신만의 개성으로 표현된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선 더 자유롭다. 아직도 누비를 벗지 못하는가 하면 벌써 반소매 티로 근육자랑에 다리털쯤이야 반바지로 시원스레 나선 이도 있다.

제각기 제 모습대로의 세상은 다채로워졌다. 그만큼 눈 구경도 풍요롭다.

노경민 작가는
시와수상문학 수필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회원인 작가는 현재 문예계간 시와수상문학 운영이사로 순수문예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